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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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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Dec 23. 2022

일상을 바꾸는 인형 눈알의 힘

그리고 그 힘을 믿는 사람들

어제는 Y네 집에 놀러 갔다. 나와 Y와의 인연은 조금 각별한데, 처음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즈음 첫째 아이가 다니던 프리스쿨이었다. 미국 프리스쿨에서 한국 엄마를 만나게 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지만, Y는 나의 친언니와 수년 전 한국에서 같은 대학, 같은 과, 친한 선후배로 이어진 사이였다. 그러다가 나의 첫째가 먼저 프리스쿨을 졸업하게 되었고 우리 집은 아이가 진학할 초등학교로 실험적인 교육 철학을 시행하는 학교, 다시 말하면 자동 배정되는 곳이 아니라 추첨제로 운영되는 곳을 지원하게 되었다. 대기자 명단에 들어갔다가 운 좋게 입학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가 터지고 같은 시기에 Y는 둘째를 출산하게 되면서 그녀와 내가 느긋하게 앉아 - 우리 애가 다닌 초등학교는 어떤지, 그 집에서는 어떤 초등학교를 보내려고 계획하는지 등 - 이런 류의 이야기는 전혀 나눌 수 없는, 각자 정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다시, 엄청난(?) 확률을 뚫고 같은 학교 학부모로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 학교를 오며 가며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 얼기설기 맺어진 신기한 인연의 씨앗 위에 푹신하게 흙을 덮어나갔다. 고르게 흙을 덮어준 뒤에는 땅이 단단해지도록 물을 줘야 하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Y와 내가 좋아하는 취향, 그 다양한 것들을 구슬 꿰듯 관통하는 가치관 같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좋아하는 게 비슷하고, 게다가 그 공통 관심사가 꽤 많다는 걸 발견한다. SF 책이라던지, 감각적인 영화라던지, 알록달록한 옷이라던지, (미국에서는 참으로 쓸 일이 없는 ^^;) 일본어 공부에 대한 마음이라던지. 이것저것 쌓인 취향 더미를 유심히 들춰보다 보면 그녀도 나도 삶을 유쾌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사는 느낌을 받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 Y는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에 모아두는데 나는 그녀의 그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공모전을 함께 준비하자고 협업 제안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그녀가 승낙을 해주었고 그 준비의 일환으로 그녀의 집에서 첫 미팅을 하게 된 것이다. 미팅을 하기 전 고구마를 구우려던 Y가 뭔가를 발견하더니 테이블로 데려왔다. 손가락만 한 작은 고구마에는 얇은 싹이 두어 개가 올라와 있었는데 우리 둘은 그 고구마를 보면서 뭔가 외계인 갔다며 너무 귀엽다고 꺅꺅 환호를 했다. 우리들의 삶이 유쾌해지는 순간이었다.


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

Y가 쪼매난 컵(이게 또 검정 줄무늬라서 내 마음의 흙이 물을 잔뜩 머금어갔다. 크흐~)에 작은 고구마를 쏙 끼우고 영어로 구글리 아이(Googly Eye) 혹은 위글 아이(Wiggle Eye)라 불리우는 인형 눈을 붙여주었다. 어쩌면은 음식 재료에 싹이 났으니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거나 아니면 요리를 준비하는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는 일이건만, 테이블에 똑바로 선 채 팔을 위로 뻗어 올리고 두 눈까지 똥그랗게 뜬 녀석은 우리 두 사람의 하루, 아니 나는 지금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으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확신할 수 있었다. Y는 일상에 숨어있는 귀여움을 발견하고 한껏 즐길 줄 아는 사람, 그것을 더 돋보이게 해 줄 인형 눈알쯤은 언제나 준비되어있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를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거늘, 마음의 결이 같은 이를 가까이 둘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나도 부엌 서랍에 넣어놓은 인형 눈알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핼러윈 때마다 아이들을 핑계로 산다고 하지만 여기에 내 속마음을 내보이자면 사실 내가 더 좋아해서 쟁여놓는 녀석들이다. 여기에는 분명 일상을 순식간에 바꿔놓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숨어있다. 아마 Y도 그걸 알고 있는 거겠지. 어디든 붙이기만 하면 생명을 불어넣게 되고, 더 멋진 것은 유쾌한 유머까지 더해진다는 점이다.


나의 일상


글을 쓰다 보니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도 생각났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영화에서 하얀 동그라미 안에 까만 동그라미가 채워진 인형 눈알은 큰 동그라미 안에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베이글과 더불어 영화의 핵심 상징물이기도 하다. 아마 감독인 대니얼스도 요 귀여운 인형 눈알에 숨겨진 엄청난 잠재력을 알아보았던 이들 같다. 그 사람들을 당장 만날 일이 있겠냐마는 만나게 된다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아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 사람들 마주치게 될 황당한 일이 벌어질런지. 이러나저러나 이 글을 발행하고 나면 드라이어에서 빨래 꺼내러 가야 하는 건 똑같거늘, 이왕이면 가능성을 닫아두는 것보다 활짝 열어두고 살아보자.  두 눈을 인현처럼 똥그랗게 뜨고.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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