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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서련 Feb 07. 2023

평화주의 창작자의 고민

내가 만든 주인공을 어떻게 구석으로 몰아넣을까

최근에 쓴 글을 둘러보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짧은 기간이지만 비슷한 주제로 쓴 글이 2개가 보였다. 플랫폼에서 인기를 얻은 콘텐츠, 즉 각기 다른 플랫폼에서 어떤 소재를 내걸어 그들의 소비자를 자극하는지에 대한 글이었다. 작년 12월 5일에는 넷플릭스의 인기 Top 10을 가득 채우고 있는 (찌르고 자르고 피칠갑이 난무하는) 폭력성에 대해 언급하였고, 올해 1월 15일에는 요즘 뜨는 브런치북의 (겹치고 겹치는 소재로서) 결혼과 이혼이 가져다주는 불행 한 무더기를 관찰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소비자인 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긴 했지만, 폭력도 불행도 요즘 세대,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랜 세월 이야기를 들으려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소재이긴 한가보다. 플랫폼, 그리고 그 플랫폼을 채우는 수많은 창작자들이 소비자들을 끌어오기 위해 엊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그 소재를 끊임없이 재탕하고 있으니까.  


거대 플랫폼의 인기 콘텐츠를 대중의 취향이라고 말하자면 나는 참 별난 취향을 가졌다. 이것은 소비자로서 나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파괴적인 것을 지양하는 건 개인의 취향이니까, 내가 돌아다니는 플랫폼에서 옆구리를 계속 찔러대는 게 좀 짜증 나긴 하지만 추천해 주는 콘텐츠를 안 보고 쓱 지나가면 그만이다.  


근데 창작자로서 이것은 조금 큰 문제가 돼버린다. 나만 해도 재미없는 이야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 아주 초반의 몇 분도 할애해 주지 않는 무자비한 독자이니까. 그렇다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독자 혹은 관객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는 흥미로운 도입부를 만들어야 하는데, 내용물을 포장할 제일 눈에 띄는 포장지는 역시 폭력과 불행인 것처럼 보인다. 


유튜브나 책에 나오는 작법 수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등장인물, 특히 주인공을 구석으로 몰아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래야 갈등이 생기고 독자들이 주인공의 상황에 몰입하여 함께 기승전결의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갈등의 마루가 높아야 사람들을 자극하는 것 같고 등장인물에게 폭력과 불행을 휘두르고픈 유혹을 받게 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40년 가까이 평화주의자, 갈등회피주의자로 살아온 나는 쉽게 그러지 못했다. 주말에 신랑이랑 아이들 라이드 스케줄로 부딪히게 되면 '에구, 그냥 내가 하고 말지.......'라며 말없이 운전대를 잡는 나인데, 어찌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세우란 말인가. 그것이 하물며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작가 지망생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글도 쓰고 싶은 것도 솔직한 마음이다. 매몰찬 성격이 못되지만 '요 주인공 녀석을 어떻게 하면 더 극단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까' 이쪽으로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마음의 짐을 끌어안고 살아가기는 한다. 


브런치에 이러한 내 고민을 풀어내면서 <푸른 사자 와니니>로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아너리스트에 선정되었던 동화작가 이현 작가님의 <동화 쓰는 법 (2018)>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랬더니 이야기 창작에 있어서 내가 오해했던 부분을 되짚어 주시며 내가 만든 인물임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리바리구는 나에게 이러한 일침을 놓아주셨다.


주인공을 문제투성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트려서는 안 된다. 부모의 이혼이면 충분한 고민거리인데, 양육자는 무책임하고 성격이 나쁘며 집안은 가난하고 학교에서는 외톨이에 공부도 못하고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반지하에 살며 옷에서 냄새까지 날........ 필요는 없다. 심지어 엄마 아빠 모두 도망치고 폐지를 줍다 허리를 다친 할머니나 할아버지랑 단둘이 살기도 한다. 아아! 이렇게나 박복하고 기구할 필요는 없다. 정말이지 이래서는 안 된다 (중략) 
독자가 공감하고 이해하고, 나아가 좋아하고 응원할 수 있는 인물. 우리가 공감할 욕망으로 우리를 가로막는 걸림돌과 맞서는 인물. 그건 신분제에 맞서는 개인일 수도, 우유 급식을 거부하는 개인일 수도 있다. 친구에게 생일잔치 초대장 하나 내밀지 못하는 소심한 '나'일 수도 있다. [E-book 35-37p에서 발췌]


주인공을 만드는 내 관점을 바꿔놓은 단어는 바로 '욕망'이었다. 갈등 - 위 본문에서 '걸림돌'이라고 표현한 부분 - 을 만들기 위해 나는 외부적 상황에 집중했는데 인물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갈등은 꼭 파괴적인 힘을 휘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 첫째는 달콤한 간식을 먹고픈 욕망이 강한데, 꼭 외계인들이 쳐들어와 지구상에서 설탕과 단 맛을 내는 조미료를 모두 없애버리는 극한 상황이 아니더래도, 엄마가 사탕 금지령 정도만 내려도 그 녀석에게는 엄청난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는 이치랄까. 

 

작가 지망생인 나는 이제 부채를 들고 바람을 일으켜 갈등의 파도를 만들어보려 한다. 그것은 지금 쓰나미(이 정도면 베스트셀러 책 ㅋ)와 풍랑은 커녕 해안가에 하얗게 부서지는 연안쇄파도 만들지 못하지만, 나는 이 부채가 평범한 부채가 아니라 자칫하면 코가 길어지는 마법의 부채라는 걸 믿는다 (허구의 이야기도 거짓말이니까?ㅋ) 


주인공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자. 그 녀석의 욕망이 무엇인지 그 안에 숨어있는 결핍이 무엇인지 이해해 보자. (에휴, 좋은 게 좋은 거다. 라며 욕망이 그렇게 강하지 못한 것이 또 문제가 된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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