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의 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서련 Aug 07. 2023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애매한 위치지만 죽기엔 충분한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는 수영장이 하나 있는데 아이들 나이가 어느 정도 되고 나니 엘레베이터만 내려가면 떡 하니 있는 수영장만큼 편리한 곳이 없다. 요즘에는 적당히 더운 날만 생기면 그야말로 아무때고 수영장을 가는 중이다.


어렸을 때 나는 수영장의 물이 너무 차가워서 수영장이 싫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다를텐데 나는 빼빼마른 편이라 그랬는지 친구들이랑 우르르 수영장을 가면 유독 나만 오들오들 떨고 손톱과 입술이 새파래질만큼 차갑게 느꼈다. 그래도 애들이랑 동 떨어질 수 없어서 꾹 참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와중에 수영을 배운 적이 없어서 친구들과 노는 동안 물에 빠질까 조마조마하며 놀기 일 쑤였다. 그때 까르르 웃으며 놀던 친구들은 수영을 배워서 그렇게 자유로웠을까? 여하튼 나는 안 그래서 소독약 냄새가 자욱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수영장에서 꾸역꾸역 놀았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다 들어서 수영 수업을 들었고 그제서야 물 속에서 숨 쉬는 법도 배우고 물에 뜨는 법도 어렴풋이 배우게 되었다. (어렴풋이라 표현하는 건 그다지 마스터를 못하고 수영 수업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 그리고 혼자 연습하면서 좋은 점은 고생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맘이 동하지 않으면 안 수 있고 언제든 하다가 그만두고 싶으면 그냥 쉴 수 있어 좋다. 추운 물에서 수영하기 싫으면  무더운 날 수영장 물이 햇볕에 살짝 데워진 날 하면 된다. 긴소매의 래쉬가드 수영복을 입 체온 유지를 하면서 편안하게 물에서 돌아다닐 수 있다. 게다가 체온이 뚝 떨어질 때는 수영장 옆 뜨끈한 자쿠지로 도망도 칠 수 있다. 


이렇듯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늦깍이 수영초보인 나도 종종 애들이랑 헤엄을 치며 지내고 있다. 신기하게도 첫째 아이는 수영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데 물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미국의 수영장들은 대부분 얕은 곳에서 시작해서 발이 닿지 않는 깊이로 내려가게 디자인이 되어있는데 첫째 아이는 바닥으로 아주 깊이 잠수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쑤우우우우우욱 내려갔다가 물 밖으로 헤엄쳐 나오고 그야말로 물개처럼 움직이고 대포처럼 물 속으로 점프해서 들어간다. 반면 계단을 하나하나 밟아 내려가는 나는 바닥으로 깊이 잠수도 못하고 그렇다고 얼굴 뜬 채로 수영도 안되는 걸 보면 잘 뜨지도 않는 편이다ㅋㅋㅋㅋㅋㅋ그러다가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리듬이라도 놓치면 허우적허우적 죽음의 공포에 너무 쉽게 휩싸인다 ㅋㅋㅋㅋㅋ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는 애매한 위치이지만 당장 물 밖으로 튀어나가지 못하면 숨막혀 죽을 것 같던 수면 아래 5센티 아래. 그 곳에서 10년같은 짧은 몇 초를 보낼 때가 종종 있는데 생사의 갈림길에서 다행히 생을 선택해 나와 켁켁대고 있으면 뚱뚱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고 느릿느릿 개구리 헤엄을 치는 모습이 보인다.  그 분들은 발이 닿지도 않는 물에서 여유롭게 대화까지 나누고 있다. 직접 보진 않았지만 그 분들은 아마 바다수영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깊은 바다에 들어갈 때 꼭 구명조끼와 물안경을 써야하지만.......


선진국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계층의 차이라고 해야하려나,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수영을 못하는 나는 내가 사다리의 아래 쪽에 있다는 걸 느낀다. 미리미리 경험하고 해놨어야 하는데.......이제와서 어쩌겄냐. 개헤엄이든 개구리헤엄이든 계속 발버둥쳐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Roadkil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