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남편은 유독 이런 날씨를 조심하라고 한다.
"오늘 같은 날은 좀 많을 수도 있어." 라며.
그의 말속엔 경험에서 비롯된 촉이 느껴졌다.
남편은 약 15여 년 전에 구급차를 타며 근무했던 일을 이야기해 줬다.
근무처가 번화가 주변이었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던 곳이라 했다.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동네는 나름 핫한 곳으로 모임이나 술 약속을 많이 잡던 곳이었다.
거기서 남편과 호프집을 가고, 뻥튀기 아이스크림에 매력을 빠졌던, 젊은 시절의 내가 생각나는 동네다.
떠올려보니 그곳 분위기에 나도 취해서 흥해서, 남편과 쉴 틈 없이 수다를 떨었던 거 같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그의 말에 공감이 갔다.
P는 구급차를 타던 시절, 하루에 최대 18건 출동을 하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그 주변은 번화가였고, 소주잔과 맥주잔이 기울던 곳이다. 사람들의 감정이 흘러넘치는 곳에서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마음이 휘청했던 곳이다.
"이상하게 유독 비 오는 날에 출동 건수가 많았어. 그래서 우리도 긴장했지."
그의 이야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날씨도 흐릿하고 분위기도 거기에 휩쓸리다 보니 그런 걸까?"
"그러겠지... 비 오는 소리, 빗방울 소리 들으면 소주가 생각나잖아."
"그리고 유독 구급차에 실린 환자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었어."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아찔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아직 훌쩍 크지도 않은 딸이 생각났다.
"헉! 그럼 위험하잖아. 그 사람들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
"그러니깐 119에 전화를 하고, 우리는 구급차에 실어서 병원에 데려다줘. 그럼 다들 수액 하나씩 맞고 누워있어."
"에엥? 수액을 맞는다고? 그럼 다음은?"
"아주 개운하게 수액 맞고 딱! 일어나서 놀래는 거지."
나는 남편의 말에 흥미가 더 생기며 계속 물어봤다.
간혹 익숙한 듯 병원 천장을 보거나, 배드가 낯설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주취자가 난동을 부리면 그때부터 간호사선생님들이 힘들다고 죽겠다고 땀을 뻘뻘 흘린다며.
그 얘기를 들으니 상상이 되었다.
내가 만약 간호사여도 그저 수액을 맞힐 수밖에 없을거 같다.
연속으로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그만 데려와 달라고 이야기 한다는 생각만 해도 진땀난다.
"병원은 뭐 좋지. 간호사들만 죽어나는 거야. 그거 수액이 얼마여. 몇 만 원 하잖아."
"그렇지. 돈을 좀 벌 수 있지. 하루에 그렇게 주취자들만 와서 다들 수액을 맞으면..."
"그래서 그런 경우도 있었어. 인근 병원에서 잘 부탁한다며 인사도 하러 오고..."
"와... 혹시 리베이트...?"
내 말에 P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설레 흔들었다.
"그때는 그런 게 그냥 문화일 수도 있을 거야. 그냥 인사하는 건지. 고생 많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구급차를 타면 별의별 상황을 다 본다고 한다.
위급한 사람을 태워서 가는 일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주취자들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지나가는 사람이나, 인근에 있는 사람이 걱정되는 마음에 신고를 해서 출동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게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의 미덕이지 않을까 싶다.
쓰러져 가는 사람을 우리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 멀쩡하게 걷기를 바라는 마음은 대부분 같은 마음일 거라고 느낀다.
"비 오는 날엔 사람들이 유독 감성적으로 변해."
그의 말에 나도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내가 두 아이를 육아하며 엄마가 되었지만, 결혼 전에는 나도 한 주당 했다.
사는 게 고달프고 일이 힘들고 연애가 어렵고, 나 자신이 누군가를 자책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감정이 무너지지 않도록, 누군가가 나를 받쳐주고
받아주기를 바랐던 날이다.
요즘은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외출해서 먹는 것보다는, 집에서 편안하게 배달을 시켜 먹는 일이 많아졌다.
넷플릭스, 디즈니 채널, 유튜브 등을 보며 가정과 함께 하는 시간도 늘어났지만, 그만큼 혼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비가 오는 날은 조심해야 하는데,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술 한 잔이 생각난다.
칼칼하고 매콤한 닭볶음탕에 또는 얼마 전 여행지에서 먹었던 대구탕과 복국이 슬그머니 나를 자극한다.
국물 맛이 깔끔하고 개운했는데 자꾸만 생각이 난다.
비 오는 날에는 조심해야 하는데 이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