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다'라는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부터 날씨가 됐든, 시험이 됐든, 가족관계가 됐든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범위에 있는 변수를 맞닥뜨리는 것이 참 어려웠다. 세월이 쌓여 굳은살이 박였음에도 불쑥 튀어나오는 '받아들이지 못함'은 주변 사람들도 무척이나 곤란하게 하는지 종종 남편이 '너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덜 고통스러울 텐데'라는 말을 진지하게 건넨 적도 있을 정도다.그래서 매일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마음 한 편에서 꺼내어 외우고 또 왼다.
'내 뜻대로 다 되면 그게 인생이냐'라고.
경우의 수가 수천 가지인 인생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법인데,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요즘 받아들임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심지어 받아들이지 못해 나이불문하고 추태를 부리기도 한다. 관공서에서 자신의 뜻대로 일처리가 안되면 규칙과 절차가 명백함에도 직원에게 폭언을 하는 경우라던가, 인간관계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앙심을 품고 범죄를 저지른다던가 하는 일 말이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해 표출되는 미성숙한 화풀이는 많은 사람들을 힘겹게 한다. 타인과 나를 동시에 학대하는 일임이 틀림없다.
받아들임도 연습이 필요하다. 어렵다면 보고 배워야 한다.내 첫 받아들임의 롤모델은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주아였다.
당시만 해도 학예회를 크게 했다. 요즘은 학급별로 공연을 하나씩 준비해서 무대에 올리고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학교는 강당의 무대를 제외한 벽면의 구역을 나눠 반별로 미술작품을 화려하게 꾸미는 과제가 하나 더 있었다. 보통 학예회를 10월에 하니 일 년 동안 만들어놓은 미술작품을 자연스럽게 늘여놓아도 좋았겠지만, 옷차림에도 TPO가 있듯 학예회에도 분위기에 맞는 전시용 작품이 필요한 법이다. 3학년 3반에 할당된 벽면은 생각보다 컸다. 텅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책인형'을 각자 하나씩 만들어 걸어놓기로 했다.
책인형은 색지를 정사각형으로 오려낸 몸통에 기다란 직사각형 팔다리를 각각 붙이고 얼굴을 그려 만든다. 이름이 책인형인 이유는 단순한데 인형이 손에 작은 책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교한 가위질이 서툰 아이들을 위해 팔다리용으로 사용할 종이를 미리 잘라 놓은 후 2쌍씩 짝지어가져가라고 했다. 아이들은 진짜 인형을 만든다고 생각했는지 몸통과 팔다리의 색상을 똑같이 맞춰서 가져갔다. 부모님이 오셔서 구경한다는 상상에 아이들 얼굴마다 설렘과 의욕이 가득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직 종이를 가져가지 않은 아이가 있는데 남아있는 종이의 색깔이 다 제각각이었다. 몸통이 분홍색이면 팔은 노란색, 다리는 파란색이었다. 아뿔싸, 더 이상 남은 색지도 없었다.
"주아야, 색깔이 이것밖에 안 남았는데 만들 수 있겠니?"
원하는 색을 공평하게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여차하면 다른 학년에서 빌려와야지 하던 참이었다. 주아는 잠깐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저 그냥 해도 될 것 같아요"
애써 태연한 척하는가 싶어 한번 더 물었다.
"이걸로 정말 괜찮겠어?"
"네, 색깔 다르면 더 예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아는 발랄하게 말하더니 종이를 집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쿨하게 자리로 돌아갔다. 상상도 못 한 반응이었다. 일말의 빈 틈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적의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내 마음이 처음으로 강박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주아는 결코 욕심이 없거나 무기력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 짧은 순간 바꿀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아쉬운 마음을 불만이나 짜증으로 드러내는 대신 수용과 도전으로 바꾼 것이다. 오히려 어른인 내가 더 전전긍긍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주아는 최선을 다해 책인형을 만들었고, 완성된 작품에 상당히 흡족해했다. 학예회 날, 스물여섯 개 중 유일하게 여러 가지 색이 섞인 책인형은 가장 눈에 띄었고, 예뻤다.
주아의 모습은 교육자로서의 나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아이들 입에 꼬박꼬박 밥숟가락을 넣어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받아들임을 실천해 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스스로 헤쳐나가 보도록 판을 깔아줄 필요가 있었다.그 이후로나는 몇 년째,학교 수업 중에 많은 자료를 랜덤으로 주거나 토의를 통해 고르게 한다. 읽기 자료도 그렇고, 미술 도안도 그렇다.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받아들일 필요도 있음을 가르친다. 모둠 활동도 무작위로 짝지어 새로운 아이들과 자꾸 하게끔 만든다. 아직도 받아들임이 서툰 한 어른으로서, 원하는 대로일이 흘러가지 않더라도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법을 우리 아이들은 배우길 바랐다.
받아들이는 마음은 긍정의 나비효과를 부른다. 세상은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자연현상이, 사람의 마음이, 이미 만들어져 운영되는 사회 질서나 제도가 그렇다. 바꿀 수 없는 상황이나 인간관계를 끈질기게 되묻고, 붙잡아 질질 끄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집착이 되어 나와 주변사람의 정신을 갉아먹고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소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눈 딱 감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어떨까. 받아들임은 한순간이지만,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불러일으키듯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삶을 선물해 줄 수 있다.
그럼에도 참 어려운 일임은 맞다. 그래서 나는 주아처럼, 마음속 동그라미와 엑스 버튼 사이에 세모 표시를 살짝 끼워 넣어 일종의 방지턱을 만들었다. 이제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냅다 엑스 버튼을 눌러버리지 않고 세모를 눌러 심호흡을 하고 잠시 보류한다. 고민하는 찰나의 순간은 받아들일 것을 명확히 나누어주고, 엑스 버튼을 누르려고 했던 마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설득해 준다. 그러면 불필요한 감정소모나 인간관계의 틀어짐 없이 금방 편안해지고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다.
뜻대로 되지 않기에, 인생은 재미있는 것이라 믿는다. 삶이라는 드넓은 바다 위 몰아치는 파도에 유연하게 올라타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