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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단단 Jun 20. 2024

선생님, 10분 넘었는데 괜찮을까요?

03. 마음의 삼각형, 양심  


평생 속도전과는 연이 없던 내가 고 싶었야구 경기의 티켓팅을 성공한 것은 지난주의 일이다. '2300번대 대기 중'이라는 상당히 불안한 문구를 마주쳤음에도 개의 자리가 좋게 것이. 속으로 이게 떡이냐를 외치며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폈다. 성공과 실패의 엇갈린 감정이 토로된 글 중 하나의 제목이 에 띄었다.



[야구 티켓 자리별로 있습니다, 1장 10만 원부터]


        

벌써 프리미엄이 붙은 암표가 팔리 있었다. 중고카페와 티켓 거래 사이트에도 전문 매크로가 잡았을 법한 2연석, 3연석을 원가의 몇 배로 판매하겠다는 글이 불티나게 올라왔다. 정말 간절한 마음인 사람도 있을 텐데, 착잡한 기분이 들어 화면을 끄려던 순간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모를 불순한 생각이 무심코 치솟았다.



'잠깐, 야구장도 먼데 그냥 팔아버리고 집에서 볼까?'



생각이 듦과 동시에 경악했다. 혼잣말을 들킨 것 마냥 뜨끔한 마음에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생각을 고쳐 잡았다. 고작 몇 만 원 유혹에 양심을 팔려는 생각이 이렇게 쉽게 들다니. 필요 없으면 깔끔하게 취소하면 될 것을, 웃돈 주고 팔아야 손해를 안 본다는 생각에 그새 욕심을 부리려 했다. 양심이 이 정도로 타협이 쉬운 것이었나, 실소가 나왔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의지는커녕 내 뜻대로 합리화하기 위한 꾀만 잔뜩 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런데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뉴스 헤드라인을 보면 마음속 양심 레이더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다 먹은 음료 테이크아웃잔을 마구잡이로 버려 길가를 더럽히는 일은 양심의 타협 중 아주 사소한 축에 속한다. 무인판매점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말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소위 말하는 '등쳐먹는') 범죄의 영역까지 넓혀보면 양심을 외면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의 편함과 이익을 챙기는 것이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시대에서, 보상도 없고 귀찮기만 한 양심을 왜 지켜야 할까. 타협의 마음이 생길 때마다 몇 해 전 학생자치 업무로 만난 전교 부회장 후보 4학년 서아가 떠오른다.






학생자치 업무 중에서는 한 해를 이끌어갈 전교회장과 부회장을 선출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투표권을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 국가답게 초등학교부터 전교임원을 뽑는 과정을 꽤 빈틈없이 진행한다. 추천인을 받아 후보자 등록을 하고, 선거벽보를 만들어 붙이고, 선거유세와 소견발표를 하고, 기표소에서 투표하고 개표하는 것까지 실제 선거 절차와 똑같다.


그중 '선거벽보를 만들어 붙이는' 단계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우리 학교는 벽보를 만들 때 후보자 전체가 같은 장소에 모여 정해진 시간 내에 만들어야 했다. 아무래도 가정에서 서포트를 많이 받는 아이가 돈과 어른의 힘으로 휘황찬란하게 만들어오다 보니 공정성이 떨어져 만든 원칙이었다. 


그 해, 전교생이 400명이 안 되는 작은 학교에 전교부회장 후보가 무려 여덟 명이였다. 중학년 특유의 앳된 티가 나면서도 넘치는 의욕을 어쩔 줄 모르는 후보자 아이들에게 수요일 방과 후 2시부터 4시 30분까지 벽보를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오라고 일렀다.


당일,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사진, 형형 색깔의 색연필과 사인펜, 귀여운 꾸밈 스티커, 공약을 메모한 종이를 이용해 벽보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흘렀을까, 한 바퀴 둘러보니 유독 느린 아이가 있었다.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조금 서두를 필요는 있었다. 4학년 1반의 김서아라는 아이였다.  



"서아야, 우리 4시 30분까지 다 완성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지?"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빨리 해볼게요"



동그란 안경 너머 아이의 큰 눈이 반짝였다. 4시를 조금 넘긴 시각, 서아를 포함한 두 명의 아이만 남아 바지런히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때마침 예정된 전화상담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다. 정신없이 무언가를 색칠하는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다 만들면 선생님 책상에 두고 집에 가세요"


"네!"



상담이 끝나고 돌아온 교실의 교탁 위에는 후보자 여덟 명의 벽보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열한 살, 온전히 자기 힘으로 만들어낸 벽보는 어설펐지만 최선을 다한 흔적이 잔뜩 묻어있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1교시 수업준비를 하는데 교실 앞문이 열리면서 작은 아이 한 명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어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서아였다.



"저기,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안녕, 어제 뭐 두고 갔니?"



"그게 아니라, 그 말할 게 있어서요. 잠시만.."




왠지 긴장한 표정이었다. 선거를 포기하고 싶은 것일까, 교실 밖으로 걸어 나가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 있니?"



"아 그게, 제가 어제 벽보 만드는 게 좀 오래 걸렸잖아요. 떨려가지고요. 그래서 사실 4시 30분까지 내야 한다고 하셨는데.. 10분 정도 늦게 냈어요. 괜찮나요?"



"어?"



"어제 집에 가니까 계속 생각나서요. 괜찮나요?"




예상치도 못한 말에 당황했다가, 요즘에도 이렇게 솔직한 아이가 있었나 싶어 놀라웠다. 그냥 모른척하고 싶었을 텐데, 그럼에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이른 아침부터 6학년 교실에 자기 발로 찾아온 것이다.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터다. 아이의 양심적인 태도가 기특하면서도 대단했. 서아는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원리원칙대로 하면 시간을 넘은 것은 맞지만, 이 일은 자기 힘으로 벽보를 만드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그랬구나, 서아야. 원래는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 안 돼.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맞추기로 약속한 일은 꼭 시간 안에 하도록 하자. 그런데 우리 학교는 벽보 만드는 시간이 넘는 것에 대해 따로 규칙이 없어서 이번에는 넘어가도 될 것 같네"



고개를 끄덕이는 서아를 보며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근데, 서아야. 너 정말 용기 있고 양심적인 친구구나. 선생님께 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했어?"




"아니요. 뭔가 마음이 불편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서아는 재빨리 인사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불편하다'라. 서아의 말은 나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다.   







옛날 인디언들은 모든 사람이 삼각형 모양의 양심을 마음에 품고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믿었다고 한다. 삼각형은 거짓말, 나쁜 생각, 부끄러운 일을 할 때마다 빙글빙글 돌면서 마음을 쿡쿡 찌르는데, 인디언들은 그것을 양심을 지켜야 한다는 신호라고 여겼다. 양심을 지키면 삼각형은 제자리에 멈추고, 무시하면 계속 빙글빙글 돌다가 마침내 모서리가 무뎌진 원이 된다. 더 이상 양심을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는 삼각형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을까. 기민하게 반응했던 어릴 적 삼각형이 타협의 시간에 묻혀 많이 무뎌진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의 '불편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어서, 동그란 양심을 품고 후안무치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이제라도 양심의 레이더를 다시 세우고 싶다.



양심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일이기도 하다. 동그란 양심이 삼각형 양심보다 많아진 사회는 부끄러움을 알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본적인 질서에 한없이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기적이고 혼탁해질 것이 뻔한 결과에 하나의 동그란 양심으로 일조하고 싶지 않다.



이익과 양심의 사이에서 우리는 항상 갈등하며 살아간다. 세상 일을 모두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좀 더 옳은 것과 좀 더 그른 것이 있다.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아닌 것이 있다. 


마음속 삼각형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 온전히 느껴지는 삶,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어 오늘도 양심의 레이더를 한껏 곤두세워본다. 





[양심] 인간이 사회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도덕적인 책임을 생각하는 감정





+)후일담

저는 야구장에 갔고, 서아는 부회장이 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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