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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잃어버린 물음표가 있다

<어른들이 잃어버린 질문들> 프롤로그

by 박단단


일곱 살의 나는 『디지몬 어드벤처』의 열렬한 팬이었다. 선택받은 아이들의 모험을 동경하며, 만약 내게 파트너 디지몬이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금했던 것은, 내 안에 잠든 ‘문장’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순간, 주인공 태일이의 마음 속 용기의 문장이 빛나 아구몬을 진화시키고, 매튜의 마음 속 우정의 문장이 빛나 파피몬을 진화시키듯, 내 마음 속에도 나만의 문장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던 어린 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나는… 다 있을 거야! 용기도, 사랑도, 지식도! 나는 다 빛낼 수 있을 거야.”


혹여 성실하지 못한 행동을 하면 내 안의 성실의 문장이 사라질까 봐 안절부절했다. 혹여 친구에게 함부로 대하면 우정의 문장이 사라질까 봐 더 친구들을 소중히 대했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혹시 모르는 순간 나타날 파트너 디지몬을 진화시킬 문장을 사수하기 위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세월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문장 따위'를 지키는 일은 점점 둔감해졌다. 용기는 긁어 부스럼이 될 때가 많았고, 성실하면 궂은일을 도맡아야 했으며, 우정은 의미 없게 느껴졌다. 순수함은 철없는 것이었고, 희망은 괜한 기대처럼 발목을 잡았다. 문장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된 나는 공교롭게도 어린 마음들과 부대껴 사는 일을 한다. 평생 먹어온 떡국이 적으면 여덟 그릇, 많으면 열세 그릇밖에 되지 않는 스무 명의 어린 사람들과 시종일관 바글거리며 산다. 그 모습은 가끔은 다큐멘터리지만 대부분은 시트콤인데, MBC 시트콤의 명맥이 끊겨서 아쉬운 사람이 있다면 우리 반 교실을 들여다보면 된다. 희로애락이 시시각각으로 바뀌고 별의별 장면이 연출된다. 나는 그 직사각형의 공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유일한 어른. 이 어린 존재들을 잘 살펴보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시트콤의 방청객이 된다.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팔짱을 끼고 앉아 지켜보다가 눈썹을 찌푸리는 장면을 마주치면 컷! 컷! 을 외치며 PD로 돌변해 사는 게 내 일상이다.


수업과 생활지도와 행정업무와 교실 청소할 일이 없을 때, 나는 주로 어린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그들과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건 내가 소위 말하는 ‘참 교사’ 여서가 아니라 그저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이 교실을 1년 동안 원만하게 끌고 나가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 좋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추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적당히 튀면 재밌고 잘못 튀면 곤란하고 안 튀면 그것도 나름대로 문제고… 수많은 탱탱볼의 경로를 예측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소머즈가 되기로 했다. 그들의 목소리, 말에 귀 기울여 그들의 마음을 역으로 추적하는 방법을 골랐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수 천, 아니 수 만개의 말들이 귀를 스쳐 지나갔다. 이해하기 쉽게 글의 형태로 바꿔 표현하자면, 수많은 평서문과 부정문과 감탄문과 명령문이 오고 갔다. 그런데 그 말 중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고, 걷던 걸음걸이조차 돌려세웠던 종류의 문장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의문문이었다. 맞다, 이 글의 제목에도 적혀 있는 물음표 달린 질문들이자 이 글을 쓴 목적 말이다. 아이들이 큰 의미 없이 내뱉었을 거라 생각되는 질문들 중에 유난히 거칠게 귀에 걸온 것들이 있었다. 어떤 질문들은 피곤한 정신을 흔들어 깨웠고, 어떤 질문들은 가슴을 후벼 팠고, 또 어떤 질문들은 내 안에 죽은 줄 알았던 마음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만들었다. ‘뭐지… 저 음이 언제 없어졌더라?’라는 말과 함께. 어린 시절 『디지몬 어드벤처』의 문장을 지키려 애썼던 마음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 같기도 했다. 문득, 아이들의 동심이 나의 초심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 지나치게 바쁜 한국 사회에서 앞만 보고 전진하느라, 비교와 반목과 혐오의 늪에서 간신히 숨만 쉬느라 잊고 살았던 어떤 마음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서론이 길었다. 글은 아이들이 툭 하니 던진 물음표를 지나치지 못한 한 어른 교사가 그 질문을 곱씹다 못해 생각을 덧붙인 본격 질문 에세이이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잃어버렸던 마음속 퍼즐 몇 조각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 조각이 ‘받아들임’이었다가 ‘용기’였다가 ‘책임’이었다가 ‘양심’ 일 수도 있는 이야기다. 또한, 어린 시절 『디지몬 어드벤처』의 문장을 지키기 위해 애썼던 나를 다시 떠올려보자는 초대의 편지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것이든, 타인을 위한 것이든 과거에 소중히 여겼지만 잃어버렸던 인생의 빛나는 물음표를 다시 데려와보자는 동행의 제안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작가가 앞으로 도덕 교과서처럼 따분한 이야기를 늘어놓겠구나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참고로 나는 도덕을 좋아한다). 그런 걱정은 접어두시길 부탁드린다. 나는 그저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며 누군가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던가 하는 가치를 설파할 능력도 깜냥도 되지 않는다. 그저 동심의 주변에서 하루의 반을 머무는 사람으로서 소중히 건져 올린 물음표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을 적었다. 나처럼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드는 이에게 자그마한 힌트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동심을 말하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마음을 톺아보자는 뜻이다.


'잊다'와 '잃다' 중, 제목에 어떤 낱말을 쓸지 무척 고민했다. 사전적 의미로 ‘잊다’는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해내지 못한다’라는 뜻이며, ‘잃다’는 ‘가졌던 물건이 자신도 모르게 없어져 그것을 갖지 아니하게 된다’라는 뜻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는 후자의 의미가 더 적확할 거라는 생각으로 '잃다'를 선택했다. 리가 찾고자하는 마음들은 일부러 기억해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없어져버린 들일테니까.


그 여정을 지금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각자도생과 도파민의 세상에서 한번쯤 멈췄다가자는 이 이야기를 펼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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