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마라토너가 되었다
나의 첫 풀코스 마라톤 기록.
결승선을 통과하고 밀려오는 여러 감정들이 뒤엉켰다.
'해냈다. 드디어. 나 정말 수고 많았다.'
'목표한 5시간 이내에 들어오지 못해서 조금 아쉽다. 그래도 통제 버스 안 타고 내 발로 들어온 게 어디야. 다음 번에 4시간 30분 이내로 당겨보자. 아니야. 또 너무 목표를 높게 잡으면 실망이 클테니 5시간 이내로 아주 여유 있게 들어오는 걸로 해보는 게 좋겠어.'
'그나저나 이따 뭐 먹지. 아, 모르겠다. 지금 너무 힘들어. 그냥 좀 앉아 있자. 육만보 넘게 뛰느라 고생한 내 발 좀 보자. 아니, 어떻게 이게 20대 여자 발이야. 왕 물집, 두꺼워진 발톱, 새까매진 발톱. 정말 환장하겠다. 운동선수들 참 대단하다. 오늘을 위해 그동안 고생한 내 발을 이제는 편히 잘 관리해 주자. 일주일 동안 푹 쉬자. 긴장이 풀려서 그런 지 다리가 슬슬 아프네.'
'제일 먼저 누구한테 전화를 하지? 일단 할머니한테 해보자.'
피니시라인 20m 전부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엄청난 환호와 기쁨을 상상했으나 예상과 달리 덤덤했다. 42.195km를 내가 다 뛰어냈다는 게 안 믿겼다. 그냥 빨리 집에 가서 누워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
우당탕탕 좌충우돌.
내가 서울에 살았더라면 대회를 좀 더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지 않았었을까. 하지만 환경 탓을 하면 될 일도 안 되는 법. 주어진 자원과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대교 3개를 건넜고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달렸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잊지 못할 에너지와 감동을 활자로 남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감사 기도를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씻었다. 전날에 사 온 죽을 절반가량 먹었다. 떨린 나머지 식욕이 떨어졌다.
4시 20분. 알람을 듣고 동생을 깨웠다. 이불을 개고 오늘 입을 복장과 용품을 방바닥에 하나씩 펼쳐 놓았다. 일명 레디샷.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5시 10분. 숙소 체크아웃을 했다. 밖은 영상 2도.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다. 동생과 부모님께 보낼 셀카를 찍었다. 양손에 핫팩을 쥐고 동생과 나란히 걸어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5시 30분. 홍대입구역에서 출발해 합정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탔다. 월드컵경기장역이 다가올수록 운동복으로 입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개찰구를 지나면서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사람들. 운동화 갈아 신는 사람. 옷 갈아입는 사람. 역무원은 역사 밖 화장실을 이용하라고 사람들을 내보내기 바빴다. 이른 새벽 시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게 4년 만이었다. 1번 출구로 나가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헤맸다. 혹자가 마라톤 참가자들은 계단으로 올라가라는 걸 듣고 인파를 따라갔다. 다리를 건너며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자동차 불빛과 대회장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6시 15분. 탈의실로 가기 전 사람들은 계단에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환복하고 있었다. 나도 입고 있던 두꺼운 외투를 벗고 세탁소 비닐과 우비로 갈아입었다. 비닐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풀코스를, 외투를 입고 있는 사람은 10k를 뛰지 않을까 추측해 보았다. 짐을 비닐팩에 넣고 물품 보관 차량으로 향했다. 19호 차량에 맡겼다. 같은 러닝 크루원에게 전화를 걸어 단체사진 촬영 장소를 물어봤다. 호수 근처에 크루티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아는 얼굴을 찾기 시작했다.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 우리 크루장을 드디어 만났다.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랄까. 책과 매직을 들고가 사인을 부탁했다.
6시 50분. 크루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대략 50명. 단체사진도 촬영했다. 탑걸즈 크루를 함께한 SH 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훈남이셨던 크루원 분께서 테이핑을 정성껏 해주셨다. 그리고 물품 보관 14호 차량 대기 줄에서 KB님을 만나 아미노 에너지 젤 1박스를 건네받았다.
출발 시간을 3분 남겨놓고 풀코스 출발선 D 그룹에 합류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핑크색 옷 입은 사람들(10km 참가자)을 헤치고 우여곡절 끝에 합류했다. 입고 있던 우비를 버리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동생은 함께 뛰진 않았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사진도 찍어주고 응원도 해줬다. 그의 존재가 꽤나 든든했다.
7시 30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 4 3 2 1 출발. 가민 워치에 시작 버튼을 눌렀다. D그룹이라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몇 분 후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첫 번째 큰 교차로를 건너기 전 반가운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데플림픽 국가대표 백OO 선수, 탑걸즈 크루 EH 언니. 나도 모르게 오두방정을 떨었다.
2.5km 지점
출발 전 못 갔던 화장실이 생각나 급히 다녀온 뒤 다시 페이스를 찾았다. 내 페이스는 1km당 6분 30초 ~ 6분 40초를 유지했다. 달리면서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달리는 자세는 어떤지 유심히 관찰했다. 혼자 달리는 주자, 2명 혹은 5-6명 무리를 지어서 달리는 주자 등이 있었다. 절반은 대회티를 입었고 나머지는 각자의 소속 크루, 클럽, 동호회 티를 입고 있었다. 단체티를 입으니 가장 좋았던 점은 주로에서 응원을 한 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사람들이 단체에 소속되려 하는구나를 피부로 느꼈다. 4년 전 혼자서 10km를 달렸을 때는 이게 내심 부러웠다.
4km 지점
끼고 있던 장갑을 버렸다. 양화대교 건넜고 계속해서 일관된 나의 호흡과 자세에 집중했다. '습습후후- 습습후후-' 나의 레이스는 중반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에 추월 당하는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기온도 점점 오르고 체온도 점점 오르기 시작했다.
5km 지점
입고 있던 세탁소 비닐을 버렸다. 첫 번째 급수대가 보였다. 나는 마라닉 tv 에서 배운 대로 첫 번째 테이블이 아닌 거의 마지막 테이블에서 종이컵을 살포시 낚아챘다. 달리는 속도를 유지하며 컵을 살짝 반으로 구겼다. 끝부분을 오른쪽 입꼬리에 대고 흘리지 않도록 물을 마셨다. 첫 급수를 부드럽게 성공하니 그다음부터는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급수는 5km 지점마다 준비되어 있어 8번을 마셨다. 하프 지점에서 준비된 에너지 젤을 하나 챙겼다. 출발 전에 한 번, 10km마다 한 번씩 총 5번을 먹었다. 하프 이후부터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초코파이 하나, 바나나 한 개도 먹었다.
달리면서 참 많은 주자들을 봤었지만 그중 몇몇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었다. RUNNERS CLUB SINCE 1997라고 쓰인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달리던 아저씨, 백발이 인상적이었던 할아버지, 핑크색 TOKTOK 티셔츠를 입고 달리던 여성분, 빠른 속도로 왼쪽에서 추월하던 탑걸즈 크루 EK언니.
장장 5시간을 혼자 뛰어야 하는 레이스에서 여러 감정이 나를 찾아왔다. 어찌 보면 고독하고 지루하고 힘든 시간일 수 있다. 풍경 구경도 하고, 함께 달리는 사람들 구경도 했다. 중간중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응원을 받았다. 23~28km 지점에서 간이 화장실을 다녀왔다. 천호대교 위 재래식 3칸 간이화장실이었다.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줄을 섰다. 꾸준히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니 무릎이며 다리에 통증이 느껴졌다. 잠금장치가 없어서 뒷사람이 문을 잡아줘야 했었다. 내 앞 여자 주자 분과 서로 문고리를 잡아주고 파이팅을 건네며 다시 레이스를 이어나갔다.
왼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졌다. 이러다가 완주 못하면 어떡하지 덜컥 겁이 났다.
느릴지언정 걷지 않는다
다시 멘탈을 붙잡았다. 페이스가 점점 6분 40초에서 7분 30초까지 떨어졌다.
28km 지점
진짜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다은아. 마지막 훈련이 28km였어.
이제부터는 Persoanl Best야.
지금도 충분히 잘했고 잘하고 있어.
완주 못 하더라도 일단 35km 까지 가보자.
그리고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
그리고 나는 마법의 주문을 뱉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
28km를 지난 후부터 피니시 라인까지
낮 10시 50분경부터 12시 40분까지
1시간 50분 동안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를 무한 반복했다. 포기하고 싶은 나약함과 완주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그저 발을 굴렀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덕분에 6분대로 다시 페이스가 올라갔고 한두 명씩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의 구간 35km 지점을 지났다.
그래 이제 7km만 더 가면 돼. 거의 다 왔어. 여기서 포기하면 너무 아깝잖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보자고.
걷다 뛰다를 반복하는 주자들 사이에서는 나는 나를 응원했다. 평소라면 '저 사람 이상한 사람 아니야?' 싶겠지만 나는 내심 나의 혼잣말이 다른 주자들에게도 닿길 바랐다. 나의 목소리가 주저앉고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힘과 응원이 되길 바랐다. 그 마음이 통했을까.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 주자가 내 옆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어'라고 선창 하면 그 주자는 '할 수 있다'라고 함께 후창 했다. 1km 정도를 함께 외치며 달렸다.
그러다 한순간 울컥했다.
울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안 돼. 울지 마. 울면 호흡도 달리고 에너지도 많이 소모되니까 5시간 안에 완주 못 해."
그리고 함께 할 수 있다를 외치는 페이스메이커 그에게 나의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비슷한 속도로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천천히 달렸고 그와 멀어지게 되었다.
38km 지점
난 분명 뛰고 있는데 왜 이리 더딘 것인지 답답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팔 치기도 형편없었다. 자꾸 나약함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거리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개중에 어떤 아주머니께서 나의 혼잣말을 들으셨다. '우리 조카! 그럼 할 수 있지!! 할 수 있고말고!!!'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게 아닌가.
39km 지점
파란 풍선에 줄을 메고 달리는 페이스메이커 분들을 보며 뛰었다.
40km 지점
주로에서 러닝 크루 동기를 만나 파이팅을 건넸다.
41km 지점
정말이지 1km가 이렇게 멀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분명 발은 달리고 있는데 계속 제자리인 거 같은지. 그때 거리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며 응원해 준 사람들에게 참 고마웠다.
42km 지점
경기장을 들어서기 전 오른쪽 펜스에서 아빠가 보였다. 큰 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멍 때리고 있던 아빠가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했다. "미리 준비했어야지!" 반가움도 잠시 나는 버럭 화를 냈다. 아빠는 그 소리에 나보다 더 빨리 달려 자리 잡은 펜스에서 달리고 있는 나의 사진을 몇 장 찍어주셨다. 아쉽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끝난 후 동생에게 물어보니 화장실을 갔었다고 한다. 왜 하필...
경기장 직전
이어지는 펜스 길 왼쪽 코너에서 크루원들이 목이 터져라 응원해줬다.
그리고 경기장 입구 바로 앞 오른쪽에 동생이 보였다. "누나 파이팅!!!!!"
경기장 안은 한산했고 트랙의 3/4를 달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피니시 라인이 보였다.
나는 마침내 해냈다.
나의 정신력에도 믿음이 생겼다. 항상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너는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한 것 같다고. 어떤 일을 해도 3개월을 넘기기가 힘든 것 같다고. 나의 단점이라고 생각되는 부족한 끈기와 인내심을 극복하고 싶었다. 풀코스도 완주할 정도면 정신력 하나만큼은 자타 공인 알아주지 않을까 싶었다. 본격적인 나와의 싸움은 28km부터 시작이었다. 수많은 유혹들을 뿌리치기 위해 자기 최면을 걸었다. 다른 사람들의 응원에도 보답하고 싶었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었다. 그리고 해냈다. 이제 나는 두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날의 나를 기억할 것이다. 1시간 넘게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를 스스로에게 외쳤던 그때를.
이제 할 일은
감사하는 것이다.
가족, 러닝 크루 멤버들, 친구들, 리딩클럽 멤버들, 모닝러너 멤버들, 인친들, 함께 뛴 주자들, 거리 응원해 준 시민들, 대회를 안전하게 연 주최 측, 교통경찰들 등.
2022년 11월 6일
그날의 교훈, 감동, 에너지를 평생 기억한다.
겸손히
즐겁게
오래 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