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지 못한 편지
여러 해 고민 끝에, 이별을 위한 편지를 쓰기로 했어.
글을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우고.
글자 크기를 8포인트로 줄여서, 밤새워 쓴 편지였지.
파도가 폭풍처럼 일렁이는 겨울 바닷가.
얼음처럼 차가운 모래 위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하얀 종이 위에 쓴 편지를 랩으로 돌돌 말았어.
밤새도록 마신 이태리산 와인 빈병 안에 편지를 넣고,
물이 스며들지 않게 코르크로 깊게 누르고,
다시 랩으로 몇 번이고 감쌌지.
차마 그에게 보낼 수 없는 편지가
바닷가 어느 지점에서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어.
몇 해가 지났어.
아무 생각 없이 TV를 켜고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드라마 배우가 독백을 하듯 읊조린 대사 속에
그에게 닿지 않을 것만 같았던 편지글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어.
마치 내 영혼이 배우에게 전위된 것처럼.
그녀가 나인지, 내가 그녀인지.
보내지 못한 그 편지가 내 건지 작가건지.
뭐라고 할까,
기분이 참... 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