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 그 풍성함에 대하여 (2)

너와 나의 치료제

by Bora

그의 병원 한쪽 벽에 A4 사이즈로 출력된 사진들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가만 보니 익숙한 배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 속에 나와 남편 모습을 발견했다. 그 사진은 그가 5년 전에 케냐를 잠시 방문했다가 찍은 사진들이었다. 그를 알게 된 지 벌써 20년이 넘어간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는 변함없는 맘으로 우리를 환영했다.

한국에 도착해서 2주간 자가격리를 마치고 우리 가족은 그의 병원을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세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하는 병원이다. 한국에 가끔 나오니 아이들은 예방접종 시기를 종종 놓치기도 했다. 그럴 때는 한꺼번에 몰아서 주사를 맞기도 했다. 이번에도 둘째의 자궁경부암 예방접종 시기를 놓쳤다. 간호사가 접종시기를 놓쳤다고 그에게 말하자 그는 무료로 주사를 맞혀 주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병원은 일산의 어느 상가 건물 단지 안에 있다. 1층에 있던 작은 슈퍼마켓과 약국 그리고 세탁소까지 그대로인 오래된 건물이다.


해마다 한국에 나 올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강산은 수시로 바뀌어 있었다. 인터넷이 세계 최강인 나라에 도착해서 인터넷 쇼핑과 음식 주문을 하고 싶어도 한국 전화번호가 없으면 아무런 앱을 깔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주문조차 안되었다. 나름 케냐에서는 잘 사용하던 ‘로키아 6’ 스마트 폰에는 한국 유심을 넣어도 먹통이었다. 통신사 매장에서 전화기를 사고 싶어도 팔지를 않았다. 몇 개월 약정으로 전화요금을 내는 조건으로 판매를 할 뿐이었다. 도로에는 전에 보지 못 했던 햇빛 가리개가 신호등 앞에 친절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르고 세련되게 변하는 한국의 문화 속에 그의 작은 병원은 소박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지나친 세련됨을 어색해하는 나를 위한 것처럼 말이다.


5년 전, 그는 케냐 우리 집을 1주일간 방문한 적이 있다. 병원문을 닫을 수 없어서 본인 대신 다른 의사에게 돈을 주며 모셔 다 놓고 부인과 함께 먼길을 온 것이다. 아마도 구정 연휴를 낀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부의 방문은 온전히 우리 가족을 위한 위로와 격려를 위한 것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시골 동네 현지 어르신들을 진료했고 부부만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을 다녀오라고 했지만 기꺼이 우리 가족의 비용을 본인들이 지불하며 동행하기를 원했다. 그뿐이겠는가? 따끈한 쑥 인절미를 인천공항으로 퀵서비스로 받아 아프리카까지 들고 왔던 것이다. 부부는 집에 머무는 동안 우리에게 짐이 될까 싶어 양말 한 켤레도 내놓지 않으셨다.


올여름 한국에 있는 동안 그의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그의 친구가 오만이라는 나라에서 코로나 19로 갑자기 숨졌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7월 말에 한국에 나오면 자신의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한 줌 재가 되어서 온다며 안타까워했다. 코로나 19 펜데믹 이후로 그는 전 세계에서 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들을 위해 전화 상담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하며 물질로 돕고 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애쓰는 그의 순수한 헌신과 사랑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왔다.

출국을 앞두고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늘 그 자리에서 있어서 고맙고 한국에 올 때마다 친오빠처럼 우리를 환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오랫동안 의사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염치없는 부탁까지 드렸다.


오래전에 읽었던 헨리 나우웬의 상처 입은 치유자가 생각이 난다. 1970년대에 쓴 책에서 우리 모두는 외로운 시대에 살며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여전히 외로운 존재들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작은 기대를 가져 본다. 우리의 삶 속에서 환대(Hospitality)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치유받을 수 있음을 말이다.

환대, 그 풍성함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치유하는 자연 치료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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