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6개월 만에 방문한 한국에서 10주간 여행자처럼 보내고 왔다. 아주 오랜만에 서울에서 두 달간 살아 보았다.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우리 가족끼리만 오롯이 머물 수 있는 짐을 서울 경희대로에 풀었다.
숙소는 작았지만 비싼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월 5만 원에 방 3개와 부엌 겸 거실에서 지내게 되었고 고시원처럼 꾸며진 2층 집에는 무더운 한국 여름을 잘 버티라는 듯이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가 되어 있었다. 어느 분의 소개로 마음 좋은 주인장을 만나 아주 편안한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래서 특별한 작전을 계획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만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었다.
서울 시내를 휘젓고 다녔던 90년대와 2000년대가 아닌 서울 지하철 노선은 한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복잡했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카카오 지하철 노선을 눈이 빠지게 쳐다보고 쳐다보았다. 거미줄처럼 이곳저곳이 겹쳐진 예쁜 라인의 색들은 아직 촌티가 덜 빠진 나를 긴장시켰다.
어느 때는 전철을 몇 번씩이나 갈아타며 계단을 내려가고 오르는 일이 곤욕스러웠지만 그 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먼길 찾아가는 기쁨이 더 컸다.
이번 나의 고국 방문의 키워드는 환대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환대란 누군가를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딱 그런 대접을 받았다. 이제부터 그 따뜻한 만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특별히 나와 그녀들. 1대 1일의 만남에 대해서 말이다.
첫 번째 만남은 중년의 권 여사님이다.
죽전 신세계백화점 1층 샤넬 앞에서 그녀와 만남을 약속했다. 집에서 1시간 30분 걸리는 짧지 않은 거리였다. 우린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삶을 진실하게 나누었다. 나에게 ~님, ~씨가 아닌 이름을 불러주던 그녀다. 서로 삶과 어려운 마음을 꺼내었던 그날 우리는 성큼 친밀해졌다.
두 번째 만남 역시 중년의 여인이다.
판교 현대백화점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다정다감했다. 동안의 삶을 많이 나누었다 할 때쯤 그녀가 맘 속 깊이 담아 두었던 아픔을 보여주었다. 시간이 흘러도 가슴 깊이 담고 있는 그녀의 고통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왔다. 그렇게 우린 연약함으로 연대감을 갖게 되었다.
세 번째 만남 또한 중년의 그녀이다.
쉰여덞까지 싱글로 살았던 그녀는 두해 전 신실한 그리스도인 남자분을 만나 결혼을 했다. 작은 아파트에서 아기자기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자신의 몸으로 아이들을 낳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자식들을 말할 때 우리 딸, 우리 아들이라는 모습에 진정함이 담겨 있었다.
우린 90년 대에 열정적으로 선교회에서 함께 활동을 한 사람들이었다. 추억을 나눌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녀가 듣고 내가 말하고 내가 듣고 그녀가 말하고 함께 먹고 걷고 쇼핑하고 그렇게 8시간을 보냈다.
네 번째 만남은 불면증을 앓고 있는 중년의 여인이다.
모델처럼 몸매가 날씬하고 세련된 그녀는 오래전부터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허리 협착증까지 생겼다. 그녀의 육체적인 연약함으로 몇 번이나 만남이 어그러질뻔했다. 20년 전에 알게 된 그녀는 가방 가득 먹거리와 화장품을 챙겨 왔다. 자신과 자녀들에게는 인색한 그녀였지만 남을 향한 사랑이 컸다. 2시간의 만남이 너무 아쉬웠기에 헤어지고도 카톡으로 계속 안부를 물어왔다.
그 외에도 나와 연배가 비슷한 그녀가 고속터미널로 달려와 쇼핑을 함께 했고 나보다 내 남편을 더 좋아한다고 허물없이 말할 수 있는 김여사 님을 인천에서 만났다. 또한 결혼 후 15년 동안 일을 쉬다가 간호사로 다시 복직을 한 언제 만나도 좋은 그녀를 수원역에서 만났다.
그녀들은 나에게 그 어느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나`라는 존재에게 시간을 내주었고 기쁨으로 음식을 대접해 주었다. 내가 한 것이라곤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 냉방 시설이 잘된 지하철을 타고 먼길을 달려간 것뿐이었다. 눈을 마주 보고 마음을 열고 그녀들과 함께 추억을 나누고 삶을 공유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