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입원

by Bora

김포에서 평택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달리는 방역 택시 창문 너머로 연두색과 짙은 초록이 뒤섞인 나무 잎사귀들이 바람에 한들한들 추는 몸짓이 마치 나를 향해 위로와 환영의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잘 닦인 도로 위를 부드럽게 차는 달려 나갔다. 2시간쯤 지났을까. 안성을 지나 낯익은 평택 초입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니 장이 막 오픈을 시작했는지 고소한 음식 냄새가 택시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아침을 거르고 차 오른 아이들은

어느새 잠이 들었고 군침을 돌게 하는 기름진 냄새에 스스 눈을 떴다.

주차장에 다다르자 어디에서 본 듯한 뒷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여보, 어머님 아니셔?”

“아니야, 택시비 거실에 놓고 가시라고 했는데…….”

“어머님이 우리 보고 싶어서 기다리신 것 같아.”

며느리인 나는 반가움과 죄송한 마음이 교차했다.


남편은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난 첫째 아들이다.

내가 본 어머님은 자식들을 평등하게 대하셨. 너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말이다. 자식들의 농담도 곧 잘 받아주시는 센스까지 있다.

가족 모임으로 가끔 만나는 서방님은 '마는 형 돌 사진은 찍어주고 나는 안 찍어 주었다.'며 말하곤 했다.

어느 해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게 되었다. 시댁에서 서방님 가족과 우리 가족이 아침을 함께 맞이 했다. 우린 어머님께 세베를 하며 용돈을 드렸고 어머님께서는 봉투를 자식과 손주들에게 하나씩 챙겨 주셨다. 서방님은 웃으며 '봉투 안 세뱃돈이 나와 형이 다른 것 같다.'며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서방님은 자신의 아픔을 간간히 표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과 직장 그리고 소모임에서 조차 사랑을 받아 온 사람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잘 모른다.

남편에게 "어머님이 당신을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아."라고 말하니

남편은 "나 특별하게 사랑하는 건 아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 어머님의 사랑과 기대를 받았던 큰 아들이 컴퓨터를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범하지 않은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고 했을 때 조금 당혹스러워 하셨을 것 같다.

나는 오래전부터 주중엔 대학선교회 간사로 주말엔 교회사역자로 일하고 있었고 월급은 박봉이었으니 통장에 모아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어머님은 아들이 결혼 하자마자 신학공부 하더니 목회자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기 힘드셨을 것이다. 교회 월급은 직장에서 받는 월급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교회를 안 다니시는 어머님은 편이 교회를 다니는 것을 말리지 않은 을 후회하듯이 말하셨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술을 안 먹는다고 해서 반대를 안 했더니 목사가 되었다. "

술을 좋아하시던 당신의 남편에게 질리신 어머님이셨다.


당신의 아들이 첫아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교사 훈련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기가 막히셨 것이다.

둘째 아이를 낳고 우린 아프리카로 나가기 위해 살던 집 정리하고 잠시 어머님 댁에 머물렀다. 그동안 아들 가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맘고생을 많이 하던 어머님은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셨다.

“네가 남편에게 잘 이야기해서 한국에서 목사로 면 안 되겠니?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지 아도 되잖니.”라고 말이다.


3년 6개월 만에 만난 어머님은 더 마르셨고 귀가 어두우셨고 힘이 없어 보이셨다. 먼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시고 냉장고 안에 김치와 반찬을 챙겨 먹으라며 아쉬워하셨다.

깔끔한 성격이신 어머님의 집은 한눈에도 거실과 방, 화장실, 베란다까지 구석구석 청소를 하신 게 명했다. 체력이 약하신 분이 몇 날 며칠 동안 아들 식구를 맞이 할 준비를 하셨을 텐데 죄송하고 감사했다.

3년 반 만에 만난 손주들이 청년들처럼 성장한 걸 보시고 참외와 사과, 포도, 오이, 꽈배기, 찹쌀도넛, 두부와 조림 닭을 사 오셨다. 냉장고에는 열무김치와 파김치와 오이 부추김치를 만들어 놓으셨고 냉동고 안에는 딸기와 오리고기, 찌개용 돼지고기, 곶감, 대봉, 오징어젓갈, 생선과 건어물 많은 먹거리를 채워 놓으셨다. 그중에 눈에 띈 것은 아들 식성을 어찌나 잘 아시는지 아이스크림은 팥맛이 진한 비비빅만 사다 놓으셨다.


어머님은 조용히 그분의 성격으로 사랑을 표현하시는 분이시다. 나와 다른 어머님이시지 만 나는 어머님의 사랑을 충분히 느낀다. 케냐에서 온 우리 가족이 어머님의 공간을 자가격리 장소로 사용게 되자 이웃에 사는 딸의 집에서 지내셨다. 마음 우리 가족에게 있으시니 후라이드 치킨과 과일을 사다 나르시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다. 그리곤 1주일이 지나자 대상포진이 걸리서 입원하게 되었다.

우리가 한국에 입국하기 전, 백신을 맞으시고 1주일 동안 몸살을 앓으셨다 하셨다. 시댁 삼 남매들은 어머님의 대상포진은 백신의 후유증이라

며 미안해하는 내 마음을 달래 주었다. 그러나 맘이 편안하지 않았다. 가족 카톡방에 이번 병원비는 우리 부부가 내겠다고 했지만 그 또한 부담이니 함께 내는 것이 좋겠다 하신다. 어머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 우리들의 등장이 대상포진으로 나타난 것 만 같다.

입원 중에도 쌀은 충분하냐며 전화를 걸어오신 어머님의 사랑에 며느리는 미안마음뿐이다. 아무래도 부모님 사랑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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