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6개월 만에 변한 세상

집이란 무엇일까?

by Bora

한국에서 벌써 7주를 보내고 있다. 자가격리 2주를 빼면 5주다.

우리 가족은 서울 경희대 의료원 뒤쪽 조용한 연립 주택가에서 잠시 지내고 있다.

1층은 현 주인이 살고 전 주인이 단층만 있던 집 옥상에 2층을 올린 집 같다. 우리가 머무는 이층 집 구조는 오른쪽으로 방 3개와 왼쪽으로 방 2개인데 그중 1개는 주인이 개인 창고로 사용하고 1개는 방문을 떼어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쁘게 사는 젊은이들이 잠만 자는 딱 그런 스타일이다.

작은 공간에 싱크대와 인덕션이 있어 간단하게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고 냉장고와 전자 랜즈, 식기류, 식탁과 작은 세탁기가 준비되어 있다. 다행히도 작은 방마다 에어컨이 설치가 되어 있고 방 2개에는 싱글 침대와 수납장이 있다. 다섯 식구가 서울에서 잠시 지내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이런 방들이 서울에서 월 50십만 원 정도 한다니, 이 가격과 공간에 비교하면 나이로비의 월세는 비싼 것이 아니다.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은혜를 입었다. 이번에도 우린 좋은 사람들의 손길을 통해 서울 경희대 쪽에 머물게 된 것이다. 얼굴 한 번도 안 보았던 마음씨 선한 분의 2층 집에서 전기세, 물세 따로 내고 월 5만 원으로 살게 되었다. 나가는 날도 정하지 않고 말이다. (있고 싶을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아가니 모든 건물의 월세는 지방에 비해 훨씬 비싸다. 집과 집 사이에는 한 사람이 걸어 다닐 만한 공간과 틈새도 없다. 전철역에서 숙소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15분쯤 걸린다. 역에서부터 시작되는 상점은 주택가 바로 전까지 빼곡히 차 있다. 상가마다 커다란 간판들이 걸려있어 눈이 아프고 머리가 찌근거리기까지 한다. 대학가라 그런지 그중 제일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는 간판은 당연히 음식점이다. 길거리 문화가 참으로 발달된 한국이다. 하지만 걷는 동안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고 원치 않는 아이쇼핑으로 정신이 쏙 나갈 지경이다.


케냐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국가에서 지정한 어느 호텔에서 하룻밤 자가격리를 하며 코비드 검사를 받았다. 아침 8시 김포공항에서 평택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 창문 너머로 25층 이상되는 고층 아파트들이 빈 팀 없이 들어선 것을 보았다. 전에는 관심 밖이었던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 이유가 정말 아파트가 많이 생겨서 그런지 아니면 한국에 머리 둘 곳이 없기에 눈에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외곽에서 서울시내로 들어오는 산 밑에도 고층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고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도 아파트들이 우뚝우뚝 서 있었다.

예전에는 논이었고 들과 산이었던 곳들이 점점 사라지고 도시로 변해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낯설기만 했다. 사치스 러운 생각인지 모르겠으나 괜스레 마음이 서글퍼졌다.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장소들이 포클레인으로 마구 파헤쳐 추억들이 뒤섞여 버렸다.

3년 6개월 만에 온 한국은 많이 변해 있었다. 마치 성난 코뿔소들이 막 싸움을 시작한 것처럼 아파트와 사람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는 태어나서 살았던 고향에서 이사를 한 번만 했다. 그것도 같은 동네였다. 태어나서 12살까지 살았던 산 밑에 있던 집과 13살부터 19살까지 살았던 동네 한가운데 집이다. 나의 두 번째 집에서 아직도 부모님은 살고 계신다. 지금껏네에서 유일하게 나무 대문인 집은 우리 집뿐일 것이다.

그 이후 고향 집을 떠나 많은 집에서 살아 보았다.

서울에서 6개월간 엄마의 외사촌 집에서 살았던 화곡동과 고등학교 친구와 자취를 시작했던 난곡 사거리 3곳에서 살았고 숙대 뒤쪽에 있던 작은 반지하를 비롯해서 3곳 그리고 27살 건대역 부근에서 잠시, 수원에서 4곳의 집, 인천에서 2곳의 집 그리고 케냐에서는 5곳의 집에서 살았다. 한국에서 안식년을 두 번 보내는 것 까지 합하면 총 23곳쯤 된다. 지금 머무는 경희대로 숙소까지 합하면 24곳이다.

수없이 이사하며 지냈던 곳 중 베스트 장소를 뽑으라면 나는 케냐 `룬다 84호` 집을 뽑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유년 시절의 산 밑에 있던 집과 룬다 84호가 비슷한 정취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곳 다 신발만 신고 나가면 흙을 밟을 수 있었고 집 주위로 나무들이 많았고 새들이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렀고 나무들은 나에게 꽃을 피워주었다. 오래된 집이라 비가 올 때면 처마가 짧아 빗물이 쳐들어 오기도 했지만 비가 몰고 왔던 흙냄새와 나뭇가지와 잔디와 풀 끝에 영롱하게 맺혀있던 빗방물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선물이었다.

케냐에 적응하는 동안 외롭고 힘들었던 시기에 살았던 룬다 84호.

오래전에 시멘트가 벗겨져 패인 구멍에 고여있던 빗물, 아침이면 큰 바나나 잎사귀 위로 또르륵 굴러 내렸던 물방울, 많은 일로 마음이 아팠던 나에게 그곳은 잃어버렸던 나의 유년기의 행복감을 다시 일깨워 주었고 지친 마음을 회복시켜 주었다.

사람만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존재가 아님을 우주의 광대함 속에 자연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기와 바람과 냄새를 통해서도 지친 영혼을 만져 수 있음을 몸소 경험했다.

남들이 보기엔 나의 유년기의 집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곳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초라함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긍정의 힘과 넉넉한 손길과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게 해 주었고 룬다 84호에서는 육체와 영혼의 숨 고르기를 배웠다.


내가 한국에 오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본다. 사실 자신이 없다.

너무나 비싼 집과 바쁜 사람들, 다양한 먹거리와 세련된 옷과 좋은 차들 그리고 돈이라는 힘.

무엇보다 너무나 멀어진 삶의 스타일과 가치관 그리고 더 단순하게 살려고 하는 나.

나는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의 삶이 투박해도 좋다. 세련된 거피 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좋고 강한 햇빛에 옷 색깔이 변하여 스타일이 촌스러워도 좋고 큰 맘을 먹어야지만 1년에 한 번 미용실을 갈까 말까 해도 좋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요리한 음식이 맛있지 않아도 좋다.

거칠고 느린 나라에서 살며 나를 돌아보며 삶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종종 생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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