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의 제왕

짝꿍 소스

by Bora

한국을 떠나던 날 까만색 이민가방 8개 안에 짐을 넣다 뺏다를 반복하며 이삿짐을 쌌다. 우리 부부는 30개월 된 아들과 막 100일 이 지난 딸아이와 함께 방콕을 경유해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공항에 도착을 한다. 날씨는 한국의 선선한 가을 아침처럼 느껴졌다. 품에 안겨있던 갓 3개월 된 아기는 기분이 좋은지 나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케냐에 답사 한번 없이 도착한 은 2007년 6월 18일이었다. 그때쯤 만 해도 한국의 식재료는 무척이나 귀했다. 한국에 잠시 방문하기라도 하면 가방 가득 먹거리를 채워오곤 했다. 특별히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미리 먹거리 리스트를 적어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별거 아닌 음식들이 아프리카에서는 귀하고 귀하다. 나는 과자와 라면, 미역, 다시마, 황기와 건나물 종류만 제외한 식재료는 냉동고 안에 보관을 다. 나의 보물 1호는 냉동고이다.

정착기에 살림을 구입할 겸 마트 안에 있는 가전제품 코너를 둘러보았다. 한국의 삼성과 LG, 이태리, 독일, 일본과 중국에서 수입된 물건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2007년쯤 한국의 일반 가정에서는 냉동고만 따로 있는 집은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케냐의 한인 집에서 빠질 수 없는 가전제품은 단연코 냉동고이다. 처음에는 아프리카에서 냉동고가 왜 필요할까 싶었는데 케냐에서 살면 살수록 참 유용한 제품이다.


한국에서 봉사활동 팀이 올 때면 센스 있는 책임자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친정 엄마의 고춧가루는 기본이요 고추장과 된장, 라면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류를 부탁하곤 한다. 팀들의 짐 박스 안에는 노란색과 다크 브라운 봉지가 들어 있었다. 봉사팀이 늘 준비해 온 식재료는 카레와 짜장 분말이었다. 그것도 1kg짜리였다. 어떤 분은 가끔 하이라이스도 사 왔지만 카레와 짜장은 짝꿍처럼 빠진 적이 없었다. 이 소스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3개의 도시락을 싸는 우리 집에서 아직도 유용한 식재료이다. 아들은 묽은 카레보다 되직한 인도식 카레를 좋아한다. 그 입맛을 충족하기 위해 나는 한국식 카레가루와 케냐 식과 인도인들이 사랑하는 강화 가루를 섞는다. 야채는 작게 잘라 볶다가 물을 약간 넣고 뭉근하게 조린다. 고기는 닭가슴살을 큼직하게 썰어 넣는다. 그 안에 종합 카레가루를 넣고 약한 불에서 끓여 준다. 맛을 살리는 마지막 포인트는 버터 두세 조각과 슬라이스 치즈를 넣는다.


우리는 케냐 나이로비 대학생들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는 캠퍼스 선교사이다. 초창기 몇 해는 사무실과 센터가 없어서 집에서 2주에 1번, 20명쯤 되는 청년들이 1박 2일로 숙식을 하며 교육을 받았다. 그때마다 1kg짜리의 50인분 카레가루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일부러 넉넉한 양을 준비해서 다음날 아침식사에도 카레와 식빵을 내놓으면 대학생들은 국물까지 다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한 번은 케냐 친구가 짜장 소스를 보더니 검은색 음식을 처음 본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처음에는 짜장밥에 손도 안 대더니 맛을 알고부터는 최애 음식이 되었다.

막내 아이를 케냐에서 임신을 하고 막달이 가까이 오자 한국 식당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사 먹은 적이 있었다. 짜장면 한가닥을 입에 넣는 순간 면발에 대한 기대감이 무너져 버렸다. 스파게티 면에 짜장 분말을 넣어 만든 음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스파게티 면으로 짜장면은 기본이요 짬뽕이며 쫄면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의 세 아이들은 내가 만들어 준 음식을 먹고 자랐다.

오늘도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녁 메뉴를 물어 올 것이다. 우리 집의 보물단지 냉동고를 활짝 열어젖히고 이리저리 재료를 뒤적거린다. 냉동고 한쪽에 짝꿍 소스가 보였다. 감자와 당근, 양파, 버섯과 닭가슴살을 볶다가 자작자작 물을 넣고 끓였다. 익힌 식료를 냄비 두 곳에 나눠 담았다. 한쪽에는 노란색 카레 가루를, 다른 한쪽에는 검은색 짜장 가루를 풀었다. 한 번에 두 가지의 요리를 후딱 만들어 내는 노하우까지 생겼으니 요리는 설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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