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에 외출을 해서 4시간 만에 도착한 집, 한 것이별로 없는데도 피곤이 몰려온다. 고도 2,000미터에 자리 잡은 나이로비는 숨 쉬는 자체만으로도 에너지가 소비된다. 태양까지 작열하도록 뜨거우면 더 쉽게 지쳐버린다. 한국에선 뭐든 열심히 하고 부지런히 살았던그 에너지에 비하면 차마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지만 나이로비에서는 뭐든 내 맘대로 잘 안된다. 생각이 빠릿빠릿하게 돌아가고 일처리도 나름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능숙하지 못한 영어실력도 한몫을 했겠으나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살던 나는, 고산지역 나이로비에서는 기름칠이 안된 기계의 톱날처럼 더디게 만 간다.
케냐살이 채 6개월도 안되어서 터득한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한 가지씩만이다. 은행이든, 우체국이든, 이민국이든 하물며 누군가와의 미팅이 있어도 하루에 두 가지 이상의 계획을 잡았다가는 오히려 약속이 어깃장 나기 십상이다.
지난해에 첫아이가 대학을 가고 두 아이는 둘 다 고등학생이다 보니 학교에서 있는 부모미팅은 안 간 지 오래다. 학기 중간과 기말쯤에는 항상 부모와 자녀들 그리고 과목별 교사와미팅을 갖는다. 아이들이 WNS 학교를 다닌 지도 7년쯤 되었는데 이 미팅은 두 번만 간 것 같다. 이유는 학교 설립 목적이 기독교 정신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기에 우리 부부와 취지가 맞았고 둘째 이유는 선교사자녀들에게는 학비의 40%를 디스카운트해 주는 거다. 이 학교는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정신으로 교육선교를 하는 NICS라는 단체에 속해 있다. 한국의 용산과 의정부에도 같은 취지로 설립된 국제학교가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 중에는 한국에서 일하다가 케냐에 온 사람들도 있다. 학교의 메인 과목 교사들은 거의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교사선교사이다. 그들은 학교에서 적은 월급을 받는다. 물론 학교에서는 집을 제공하지만 (선진국에 있는 학교는 재정이 자립이 되어서 대우를 그 나라에 맞게 해 준다고 함) 그럼에도 재정이 넉넉하지 않기에 대부분의 교사들은 검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소명과 사명이 없으면 교사로 봉사할 수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런 귀한 교사들로부터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이제는 시스템 돌아가는 것이며 모든 자세한 일정과 수업 내용이 이메일로오다 보니 학교 교육을 신뢰하기 때문에 학부모 미팅에 참석을 안 하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WNS 학교를 좋아하고 성적도 그런대로 괜찮으니 더할 나위 없이 부모인 우리 부부는 학교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다.
오늘은 거의 한 달 만에 남편과 함께 아이들의 학교 부근에서 데이트를 했다. 몰에 있는 중국식당으로 갔다. 음식 맛이 괜찮으면 아이들과 한번 올까 싶어서 우리가 먼저 식사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음식맛이 괜찮고 기름지지 않은 데다가 양이 많아서 먹다 남은 것은 포장을 해 왔다. 아이들은 한국식 짜장면을 많이도 그리워한다. 별방법을 다 동원해서 요리를 해 보았지만
도대체 한국식 짜장면 맛을 낼 수가 없으니 중국식 음식으로 입맛을 달래 봐야겠다.
4시간의 외출 동안에 내가 한 일은 고작 점심밥을 먹고 장을 보고 나 홀로 커피 한잔을 마신 것 밖에 없다. 그런데도 집에 와서 간신히 물건을 정리해 놓고는 소파에 널브러졌다. 기운이 쏙 빠져버린 것이다. 에너지가 늘 넘치는 나지만 며칠 사이로 외출을 삼일째 한 것이 힘에 부쳤나 보다. 내 맘대로 몸이 안 움직여지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올 쯤에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케냐에서는 하루에 한 가지씩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니 맘이 편해지면서 빨리자고 싶은 밤이다.
** 3월 21일(목), 감사 일기 **
1. 김치냉장고를 정리했다. 큰 통에서 작은 통으로 김치를 옮겨 담고 나니 공간이 넉넉해졌다. 김치통에 밴 김치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햇볕에 통을 말렸다. 마음이 산뜻하니 감사하다.
2.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땀을 냈다. 기분도 몸도 상쾌하니 감사하다.
3. 남편과 점심을 먹으면서 데이트를 했다.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말랑말랑한 감정만 남아있으나 그래도 감사하다.
4. 한 매장에서 예쁜 엽서를 발견했다. 가격이 한 장에 100실링(한화 1,000원)이다. 득템을 해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