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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Oct 17. 2023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

해바라기도 더 이상 해를 보지 않는다

노인복지센터에 주말봉사를 갔다. 할아버지(남편)가 너무도 그립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그토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를 보고 반갑게 달려가 인사를 했는데… 나를 몰라보신다. 나를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하시는 것이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치매라는 것이 그런것인가라는 생각에 잠시 먹먹해진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좋았던 기억만이 남아있다면야 나쁘지 않겠다 하면서도 현재와 앞으로의 남은 시간이 부정되는 것만 같아 마음한켠이 시리다. 어르신이 얼마나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지를 이곳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안다. 할머니가 하도 이야기를 많이 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늘 말씀을 반복하시곤 잊어버리신다. 나만 못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복지센터에 오시는 어르신들은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따라 하루 스케줄을 소화하신다. 센터에 도착하시면 ‘내 나이가 어때서’에 맞춰 먼저 체조를 하시며 몸을 푸신다. 치매 초기이신 분들이 많은 까닭에 오늘 날짜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며 현재의 기억을 몸으로 새기신다.  목포의 눈물, 당신 등 많은 트롯들이 있지만 어르신들은 ‘내 나이가 어때서’를 가장 열창하시고, 율동도 가장 활발하게 하신다. 눈이 반짝 반짝이면서 얼굴이 환해지면서 따라 부르기도 하신다. 참 잘 만들어진 어르신들의, 그리고 모든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들의 최애곡이다.  그러나 좋은 것도 서너 절이라고 하루종일 듣다 보면,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사가 머릿속에 빙빙 돌아 귀에 딱지가 들어앉을 것만 같다.




사랑하기 좋은 나이가 있을까? 그러나 역시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대중가요 가사처럼 인생의 맛을 알고 난 이후에 사랑하지 못할, 품지 못할 인생이, 그리고 만고풍상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공자는 예순이 되면 귀가 부드러워져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 하여 예순을 이순이라고도 했다. 그러니 강수, 낙수에 골이 패이고 바위가 모래가 되듯이 인생유수 속에 풍화되어 동글동글해진 인생이 품지 못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성숙한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상처가 나면 아프지만 그래도 그 상처를 보듬어내고 또 상처받지 않도록 돌보는데 보다 더 지혜롭지 않을까 싶다.


해바라기는 성장기에는 광합성을 위해 계속 태양을 바라보다가 성장이 멈추면  더 이상 태양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정확한 이유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성장이 완성되면, 즉 사랑이 완성되면 그 사랑의 힘으로 해바라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그러한 것은 아닐까? 이미 빛을 완전히 흡수한 후 빚어낸 화려한 꽃과 탄탄한 씨앗을 맺은 해바라기가 또 빛을 찾아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인생도 어느 정도의 성장궤도에 이르면 더 이상의 새로운 외부의 입력이 필요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조개가 진주를 만들듯이 노년에 이르면 겪어온 삶의 경험들이 빛을 발하는 창조와 생산의 단계로 가는 것 같다. 그러하기에 각각의 빛과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도 하나의 별처럼 하나의 색채를 드러내듯이 말이다.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는 게 정해진 것은 없다 하여도 인생이 익어갈수록 사랑하기에 더 좋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가을의 끝자락, 겨울 초입이다. 해가 짧아져 오후 6시만 되도 어둠이 짙게 자락을 느리뜨린다. 농촌에서는 서리가 내리기 전에 급히 서둘러 추수를 하고, 도시에서는 한해 업무를 결산하며 새해 계획에 분주한 시간이다. 거둘 것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황금같은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사랑하기 딱 좋은 계절, 다른 말로는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 그리고 상대를 더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계절이다. 모쪼록 아픈 것은 잊혀지고, 좋은 것들만 인생의 체에 걸러져 ‘나’라는 하나의 작품이 모두에게 사랑이 되고 기쁨이 되는 그러한 감사의 계절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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