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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아름 May 02. 2023

어따대고 고개를 쳐들어?

너한테 안그랬거든?!!



     

경직된 조직사회나 폐쇄적인 조직 또는 상명하복이 문화의 근간이 된 집단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또는 느껴지는 말이다. 정확히 워딩을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인사권을 빌미로 각종 불이익을 은밀하게 주니 ‘어따대고 고개를 쳐들어?’라는 자신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적어도 그들의 의식구조와 그 집단 안에서는 진리다.     


해바라기는 해를 따라 움직이며 고개를 태양을 향해 쳐들고 산다. 그런 해바라기에게 해바라기의 포식자인 인간이 ‘어따대고 고개를 쳐들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문학적 해석으로 한 곳만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한없는 예쁨을 부어준다.      


나무와 식물은 땅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양분을 흡수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뿌리는 뇌가 아닌가 싶다. 정신과 사고, 생각이 있는 뇌의 뿌리를 무한한 영원의 세계에 두고 끝없는 지혜를 받고 갈구하며 삶에서 창조와 재창조를 거듭한다. 다섯 살부터 작곡했던 모차르트도 지금도 건축 중인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의 파밀리에 성당을 보더라도 쉽게 알 수 있다.     

 



고개를 쳐든다고 말하는 이들, 곧 조직의 지휘체계에서 보다 상위에 있는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곧 하급자들의 생각의 양분이자 근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그렇게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말은 행동을 낳게 되고 행동은 습관을 습관은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의식구조는 인생에 고스란히 배어 나오고 결국은 그의 운명에 절대적 영향을 준다. 우리는 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자양분을 흡수하고 살아간다.      

‘어따대고 고개를 쳐들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개인과 조직, 그리고 사회에 지속해서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지시와 비전을 줄 수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 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구중궁궐 속 나름의 작은 권력을 가진 자와 그러한 권력자의 측근 골목대장으로 완장을 차고 다니는 자들은 자신의 말과 생각이 곧 구성원들의 의식의 뿌리가 되도록 한다. 그러니 우리는 고개를 더 쳐들어야 한다. 칼자루를 쥔 자들에 대한 고개가 아니라 옳은 것에 대한 선한 것에 대한 선택을 매 순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는 언제나 결국 홀로 선택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인생이니 말이다. 인생은 누구나 ‘하늘과 나’ 이렇게 홀로다. 결국은, 결국은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동료도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의 길을 대신 가 줄 수가 없다. 그 길은 자신만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나머지는 위로자요 당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반자들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생각의 고개, 정신의 고개를 높이 쳐들고 살아야 한다. 비록 강한 소나기와 우박으로 고개를 잠시 돌리더라도 또다시 빳빳이 고개를 쳐들어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때론 몹쓸 짓을 강요당하는 순간도 많지만, 그래도 역시 고개를 쳐들어야 한다. 결국,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마지막 호흡까지 함께 가야 할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은 누구나 동일한 심정이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도 그러고 보면 매 순간 용기가 필요하나보다. 참으로 사랑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해가 쨍하게 떴다. 바람도 시원하고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아름다운 날이다. 고개를 힘껏 쳐들고 행복한 하루를 동행하자고 자신에게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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