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아름 May 28. 2023

알면서도 알지 못했던 축복

정해진 것은 '잘되는 것만' 이었다.

‘가정의 달’ 5월에 난 주말도 연휴도 없이 근무했다. 제법 성깔 있게 내리는 비가 가시 돋친 장미처럼 제 빛깔을 내는 밤이다. 15도 남짓하는 이 쌀쌀함도 쉼을 재촉하는데 한몫을 하나보다. 더 이상 할 수 없다 싶을 만큼 일을 해서(물론 나의 개인적인 독백이니까..)인지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적어도 내가 진행했던 이 프로젝트에 대해선. 그리고 어쩌면 지금 속한 이곳에서도 말이다. 더 해줄 것도 더 줄 것도 없는 것만 같다. 적어도 이 순간 내 마음이 그렇다.


무거운 몸을 항상 넘어서는 나의 의식이 어김없이 먼저 깨어난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선명하게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인생에 있어 최고의 축복 중의 하나가 공의, 곧 공정이구나 '라는 생각말이다.


내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의 입찰이 끝났다.

시장에 제대로 진입도 해보지 못한 존재감 없는 업체가 낙찰되었다. 그들의 기술력이나 실행력이 부족해서라기 보단 그들의 존재자체가 미미해서 발주기관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내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약자 중의 약자였다. 난 사실 그들이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소식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고 무언가 모를 감동이 밀려왔다. 정말 내 일처럼 기뻤다. ' 공정하게 기회만 준다면야 그리고 철저히 블라인드로만 한다면야 진정 실력 있는 자들이 뽑히는구나'.…


실력이 없어서 기회를 못 잡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오지 않아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위치에 있든지 적어도 그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와 도움이 있다면 공정한 기회를 업체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입찰공고부터 평가위원구성, 그리고 심사 전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절 개입하지 않고 시장과 전문가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었다.


그 존재감 없는 기업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자 희망일 테고, 그동안의 고생이 보답받는다는 생각에 그들도 가슴 뭉클했을 테다. 공정한 기회만 있다면… 참여하고 싶다던게 그들의 초지일관 요구였다. 난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나 역시도 현업전선에서 병풍으로 서야 했던 때도 많았고 실력과 무관하게 특정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항상 밀려나야 했던 기억들도 상처처럼 새겨져 있다. 그렇다고 골키퍼가 있다고 공이 안 들어가랴 하는 심정으로 애써 아픈 마음을 누르고 또다시 도전하며 살아왔던 인생이지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아픔이 밀려오는 것은 아는 자만이 느끼는 동병상련의 마음이다.


은밀하게 내정된 기업이 있는 상황에서 평가를 진행하고 입찰을 마무리하는 것이 정말 죽음의 계곡을 몇 번이고 넘나드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버거웠다. 공정하게 해서 누구든 잘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은데… 그것은 꿈을 꾸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입찰조건이나 규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곳이 아니면 안 되게 만들어놓고 계속 몰아가는 것은 참 잔인한 일이었다. 한 달이면 끝날일을 다섯 달 동안이나 걸려 뒤틀린 조건을 원위치시키고 제로베이스에서 경쟁을 하게 하니 결국 예상치 못한 업체가 사업을 땄다.


정말 희망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들에 대한 이해관계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에 더 기뻤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빚쟁이가 아니지만 난 당연하게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참으로 많다. 그리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서운해하기도 하고 낙심될 때도 많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낙찰된 업체는 참으로 온 힘을 다해 노력을 했다. 이들에게 최고의 도움은 공정한 기회였다. 같은 이치로 하나님은 언제나 공정하고 공의롭게 기회를 주시니 나만 잘하면 된다. 새삼스럽게 나의 노력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해 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또 얼마나 큰 축복 속에 내가 인생을 살고 있는가도 생각해 본다.


이미 정해진 선로를 따라가듯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인생으로 나의 삶이 내정되어 있다면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지 않았겠는가. 고통은 언제나 곰탕집 김치, 깍두기처럼 따라다니지만, 그래도 반드시 좋은 날들이 있으니 수고하고 애쓰는 것은 자신이 다 가져간다. 공의가 공정이 이리 좋은 것임을  새삼 깊이 깨닫게 된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생의 법칙을 공의롭게 만드셨다는 것에 난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나만 잘하면 된다. 그는 답이요 나는 문제이니 말이다.

문제를 잘 풀면 답은 맞다. 그것이 순리이고 법칙이다.


수고하고 애쓴이들의  눈물이 보석처럼 빛을 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이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싶다.


이전 14화 내가 너를 어떻게 돕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