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수신인 없는 편지
당신이 가진 네 글자의 이름을 속삭이며 외사랑을 곱씹곤 했다. 일상 속에서 당신은 문득 문득 떠오른다. 핑크솔트 치약으로 이를 닦다가도,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열릴 때에도, 그리고 커피 전문점에서 진동벨을 받아들 때에도. 당신의 뾰루지 자국이, 뽀글거리는 파마 머리가, 내 머리를 쓰다듬던 다정한 손길이 떠오른다.
어디서 만났는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자세히 서술해 버리면 글 속에서 당신이 정말로 살아나는 것 같아서 조금 떨린다. 살아 숨쉬는 당신을 현실의 당신이 발견한다면, 왜 나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서술했냐고 꾸짖을 것만 같아서 성별은 남성, 정도로 간단히 작성하겠다.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면 이런 문장을 꼭 넣고 싶다. 상처마저도 반짝반짝 빛나는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 당신이 내게 큰 위로였음을 알까? 비록 나는 당신이 기대한 만큼의 멋진 예술가는 못 되었지만, 이 편지가 세상에 나올 때면 그때의 상처는 불을 끄면 은은하게 빛나는 작은 야광별쯤은 될 수도 있다.
당신에게 못한 고백이 있다. 나는 당신에게 눈빛으로 손짓으로 말투로 수십 겹의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긴 인어공주처럼, 나는 진짜 사랑한다는 고백은 해보지도 못했다. 어쩌면 당신이 그 사랑을 알아채고 내 사랑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도망가 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라도 사랑했어, 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있는 곳을 향해 한 번이나마 사랑을 전하고 나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내 마음은 모든 미련의 무게를 덜고 배추흰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