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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an 13. 2024

잉어를 동경하던 금붕어에게

아홉 번째, 수신인 없는 편지

금순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나의 반려 금붕어야.


이제 와 고백하지만, 사실 처음에는 너를 반려 금붕어로 들일 계획이 없었어. 나 영상학과 다닐 때, 교수님께서 '동물과 함께 인물사진 촬영하기' 라는 과제를 내주셨거든. 내 주변에는 반려동물을 기르는 친구가 없어서, 부탁할 곳도 마땅치 않았어. 과제를 수행하는 게 정말 난감하더라.


그래서 H마트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금붕어, '금순이' 너를 데려와 사진을 촬영했어. 부끄럽지만 나는 네가 그날 촬영 탓에 이동하면서 얻은 차 멀미로 오래 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단다. 그런데 웬걸, 감사하게도 너는 내 피사체가 되었던 그 가을부터 열두 번의 계절을 나와 보내 주었어.




나, 종종 그런 생각을 해.


'혹시, 어쩌면 너는 잉어를 동경하는 금붕어가 아니었을까?'


더 넓은 호수로의 여행을 위해 내 곁을 떠난 건 아닐까. 어항 속에 사는 너는 좁은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거야. 호수에서 헤엄치는 잉어가 부러웠을 테지.


나는 필연적으로 너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반려 인간이니까. 네가 호수로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야.


"어항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 네 생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너도 알다시피 금붕어들은 물 밖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존재잖아. 네 작은 몸과 여린 허파가 그 오랜 여행을 견디지 못할 거야."




결국, 내 걱정이 무색하게 넌 호수엔 가보지도 못하고. 어항 바닥에서 십여 초를 채 버티지 못하고 숨을 멈췄어. 호수까지는 십 킬로미터도 넘게 남았는데 말야. 나는 미지근한 너의 비늘을 가지런히 정리해 주며, 화단에 작은 묘를 만드는 것으로, 마지막 예를 다했지.


이제는 너의 꿈이던 호수에서 헤엄치고 있을까? 삼 년을 동고동락한 반려 금붕어와의 이별이 종종 마음에 푸른 파동을 일으키곤 해.


나는 상실의 감정이 드는 새벽이면 네가 머무른 자리에 꽃잎을 띄워 둔단다. 수국, 마트리카리아, 리시안셔스, 유럽 장미 같은. 너라면 분명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 입씩 맛보았을, 향기로운 마음을 호숫가로 실어 보내.


잉어를 동경하는 금붕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니?


그 금붕어는 동경하던 잉어들과 지느러미를 나란히 하고 유려한 금빛 꼬리짓으로 호수를 평정했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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