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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Mar 21. 2023

1. 마이너로 살기로 결심했다.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아줌마, 그거 거기에 버리시면 안 돼요.


 

아줌마! 그거 거기에 버리면 안 돼요!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덜덜거리는 카트에 쓰레기를 잔뜩 싣고 오는 아저씨, 겹겹이 쌓은 상자를 안고 오는 애엄마 뒤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저보다 더 큰 봉지를 질질 끌고 왔다. 짤그랑 캔과 캔이 부딪치는 소리, 병과 병이 부딪히는 청하한 소리가 오후의 하늘로 퍼져 나갔다. 남색 모자를 쓴 경비아저씨는 상자를 납작하게 정리하며 분리수거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저녁을 뭐로 해야 하지..' 비닐류에 비닐을 쏟아부으며 생각했다.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플라스틱류에 플라스틱을 쏟아부으며 생각다. 

 

" 아줌마! 그거 거기에 버리시면 안 돼요. "


 문득 고개를 드니 경비아저씨가 나를 보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아줌마로 추정되는 사람은 나뿐이라 아저씨가 말한 "그 아줌마"가 나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 플라스틱 하고 스티로폼따로 버려야 합니다~ "

" 아, 죄송해요, 제가 딴생각을 해서... "


 이미 쏟아져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사이에 섞여버린 스티로폼 용기를 헤집어가며 내가 아줌마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인정한다. 나 아줌마 맞다.


인정한다. 나 아줌마 맞다.


 그렇다. 나는 아줌마다. 마흔두 살이고, 애가 둘이 있다. 누가 봐도 아줌마로 보이며 누가 봐도 마흔두 살로 보인다. 그런데 누가 불러주지 않으면 아줌마라는 걸 모른다. 내가 아줌마라는 호칭을 들을 때는 오직 분리수거를 할 때 경비아저씨에게뿐이다.


 이른 아침 햇살이 흩뿌려진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빈 텀블러를 가지고 좋아하는 커피집에 갈 때, 노트북 하얀 화면의 깜빡거리는 커서와 마주할 때, 내가 쓴 글들을 엮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서점들에 입고할 때, 그럴 때 나는 아줌마도, 엄마도, 마흔두 살도, 아내도, 며느리도 아니다.

그럴 때 나는 그냥 나이다. 소녀 같은 나이며, 아파하는 나이며, 슬퍼하는 나이며, 설레어하는 나이며, 기대하는 나이다.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했던 시간들이 많았다. 아줌마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니 나라는 것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었다. 나의 출생, 생김새, 성격, 말과 행동, 내가 가진 사회적 조건들 모두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 역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또한 타인들 역시 그렇다. 세상의 시작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삶



그토록 원했던 보통의 삶


 과 다르다는 게 싫었다. 보통의 가정에서 보통스럽게 자라 보통스럽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조건들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랬기에 보통을 갈망했다.

나의 부모님은 재혼을 하셨고, 아버지는 다른 친구아빠들보다 나이가 많으셨다. 그리고 다른 친구의 아빠들보다 일찍 돌아가셨다. 지금은 한부모 가정이라는 명칭을 쓰지만 예전에는 편모가정이라고 불렸다. 편모라는 단어 무언가 갖춰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한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기에 싫었다.


 가정환경조사서에 늘 비어있어야 했던 아버지의 자리도 싫었고, 부모님이 오셔야 하는 학교행사에 언제나 참석할 수 없었던 엄마를 가진 것도 싫었다. 또 배다른 오빠들도 싫었다. 그들의 시선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차가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느낌으로 알았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곤경 속으로 밀어 넣었으면 넣었지 결코 도와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부모님께 받았던 아버지는 뭐 하시냐는 질문도 싫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을 때 돌아오는 그들의 침묵이나 당황도 싫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하거나 실수했을 때 너 그러면 아버지 없어서 그런다는 소리를 들을 거라던 엄마의 당부도 싫었다.


 어떤 것도 선택한 것이 없었으나 모두 내 것이었다. 조건들은 나를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고 나는 그렇게 대해졌다. 그 어떤 사람도 내가 가진 조건들 이상의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인 줄 알았고 그렇게 살았다. 남들보다 열등한 조건을 가진 사람, 그래서 노력해야 하는 사람으로 살아오느라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분리수거가 되는 쓰레기들마저 부러워하던 사람, 나는 분리수거조차 되지 못할 사람이라 여겼던 아픈 시간들을 오랫동안 살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왔으니 어쩌면 지금도 어느 부분은 그럴지 모른다.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나서 나라는 사람은 타인이 내리는 판단이나 평가처럼 단편적이지 않고 광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거부하느라 발버둥 치며 보냈던 혹독 시간들을 지나고 나서야 나라는 세계가 고유한 마이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이저로부터 소외된 마이너가 아니라 고유한 마이너, 누구와 비슷하지도 누구로 대체될 수도 없는 세계. 나는 열등한 사람이 아니라 고유한 사람이었다. 그걸 몰랐다. 세상은 내게 특이하고 열등하다고 했지 특별하고 고유하다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그렇게 여기게 된 것은 세상과 그들과 부모에게 동의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숨 쉬듯 자연스럽게 동의한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동의하지 않기 위해서이며 동의하는 나를 점검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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