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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May 07. 2023

16. 당신은 증명될 필요가 없다.

메이저가 아니라 마이너로 살겠습니다.



 / 내가 과거에 기업체 어디 어디에 있을 때는~



/ 내가 그 일을 할 때는~

/ 내가 이 일을 하면 이렇게 안 하지~

/ 그거 그렇게 하면 엄청 쉬운데~


 나는 그분이 과거에 뭘 했는지, 또 어떤 일을 쉽게 하실 수 있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고 묻지도 않았다. 그런데 묻지 않은 것을 대답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 녹아가는 아메리카노에 든 투명한 각얼음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진다. 자기 PR 시대인데 내가 시대를 못 읽고 있는 건가.. 왜, 어떤 연유로 내가 자신의 성취에 대해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카페에서는 은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공기 중에 스며있는 원두의 향이 마음을 차분해지게 했다.

좋은 이야기를 나누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묻지 않은 이야기들만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주로 듣는 쪽이라 대부분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한참을 듣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이걸 물어봤던가?' 물론 상대방이 나를 보기에 저 사람은 말수가 적은가 보다 할 수도 있고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기엔 뭔가 께름칙했다. 왜일까. 무엇이 나를 께름칙하게 만들었을까. 내부적인 원인인가 외부적인 원인인가..


 묻지 않은 것들을 이야기하시는 분들의 특징이 있다. 그런 분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설령 질문을 한다고 해도 타인이 궁금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묻는다.

 앞에 있는 타인궁금해서 하는 질문과 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는 질문은 다르다. 그분들은 타인을 만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만 만난다. 나는 그들의 업적이 궁금한 것이 아니었는데, 내면세계가 궁금했는데 (아 물론 그분들의 업적을 통해 그 내면세계를 조금 알게 되었지만) 과연 그런 방식이 를 지속하기에 좋은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녹으면 사라질 얼음

 

녹으면 사라질 얼음


 내가 무엇을 이루었고 어떤 일을 성취했다.라는 것은 곧 성취물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성취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이야기한다. 상대방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런 마음 안에는 성취에 따라 타인을 평가하는 마음 있다.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나에게는 과연 성취로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마음이 없었는지. 그런 마음의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 편견으로 작용한 적은 없었는지 말이다.


 세상은, 노력을 멋지다고 하지 않는다. 미련하다고 하지.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증명이 되지 않으면 능력이 없다고 본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려면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노력과 능력의 차이는 <증명>에 있다.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는 것이다. 보여준다는 것에는 반드시 타인이 필요하다. 타인에게 능력으로서 나 자신을 <검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능력이 존재의 앞에 자리할 수 있까?


 노력이든 능력이든 그것은 타인에게 나를 증명하는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노력이나 능력으로 내 <존재>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와 내 존재를 일치시킬 필요는 없다. 농부에게 괭이는 도구일 뿐이지 괭이가 농부는 아닌 것처럼, 자동차가 이동수단일 뿐이지 운전자와 하나 아닌 것처럼, 비바람을 피해 쉬기 위한 집이 주거지일 뿐이지 거주자와 하나가 아닌 것처럼. 노력이든 능력이든 그로서 얻어지는 성취든 그게 어떤 인간이라는 존재의 증명일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인 숨결이며 바람이다. 바람에 증명이 필요하지 않듯이 사람도 그다. 그래서 당신도 나도 증명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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