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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Apr 10. 2022

4화. 만남과 헤어짐.

여름. 군 관사에 더위가 몰려오면.

덥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반팔, 반바지가 필수다.

덩그러니 군 아파트 네동에 시멘트 바닥으로 이루어진 길. 정리되지 않은 뒤뜰.

이렇게 세가지만 생각해도 될 만큼 단출하다. 아직 여름 초입이라 기분 좋은 따뜻한 날씨 덕에 아이들과 뒤뜰에서 돗자리를 펴고 놀았다. 집에서만 있던 아이들을 최대한 바깥바람을 쐬게 만들고 싶은 엄마 마음에 도시락을 싸서 멀리도 아닌 바로 뒤뜰로 소풍을 왔다. 아직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지 않고 살짝 자란 풀들이 쿠션 역할을 해주었다. 아이들과 난 돗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날은 옆 동 뒤뜰로 소풍을 갔다. 티브이를 보겠다는 아이들을 설득해 바깥활동을 하러 나갔다.

집에 있던 케이크를 가지고 살짝 허름한 벤치에 자리 잡고 시간을 보냈다. 막상 나오면 즐겁게 노는 아이들.


군 관사에 이사 오고 코로나로 집콕이 이어지자 아이들과 나는 더 고립되어 갔다. 

우리들끼리 지내는 것도 한두 달이지 계속 이어지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첫째 아이가. "엄마가 내 친구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호소하는데 참 마음이 아팠다.

군 관사에도 아이들이 많이 살 텐데.. 서로 만날 일도 거의 없고 너무 초면이라 서로 어색하기만 했다.

뒤뜰로 소풍을 즐기고 있는데 통통하고 성격 좋아 보이는 초저학년쯤 보이는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배회하고 있었다.

' 하빈이랑 친구였으면 좋겠는데..' 속으로 생각하며 남자아이게 물었다.

"친구야 넌 몇 살이야?"

덤덤한 목소리로 "저 1학년이에요"

기분이 좋았다. 하빈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군 관사에 와서 처음으로 만난 친구였다.

알고 봤더니 같은 초등학교 1학년 3반 친구였던 것이다. 같은 반 남자 친구 아이를 만난 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모가 케이크 가져왔는데 같이 앉아서 먹을래?"

씩 웃는 친구. "네~"

그렇게 하빈이에게 첫 번째 군 관사 친구가 생겼다.

다행이다. 친구가 생겨서.



오후가 되니 갈수록 아이들이 많이 나왔다.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집에 있는 아이들이 많다. 오후에는 특별한 일이 없기 때문에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원래 알던 아이들도 있기 때문에 하나둘 모여서 놀기 시작한다. 이때다 싶어 늘 친구에 목말라하고 심심해하는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쭈뼛쭈볏하더니 이내 친구도 생기고 언니, 오빠들과 함께하며 군 관사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군 관사는 일반 아파트에 사는 것과는 좀 다른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곳 군 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끼리의 나름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규모가 크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살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어울린다. 옛날 어렸을 때 마을에서 격 없이 친구, 오빠, 형, 누나와 함께 하듯이. 난 그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내 성격을 닮으면 우리 아이들도 관계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을 것 같다.

기회를 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좁아지는 것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나쳐도 보고 함께 해보기도 하면서 배워가는 건 참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요즘은 개인주의 성향도 워낙 강하고 아파트의 특이한 구조속에 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다양한 연령대를 만나 서로 함께 놀 수 있는 기회는 사실 많지 않은 것 같다.

카톡으로 친한  친구와의 관계 형성 위주로 지내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폭넓게 언니, 오빠, 동생, 친구들이 모여서 뛰어노는 모습은 엄마 입장에선 참 좋아 보인다.

군 관사 안의 아이들이 오며 가며 사랑해주는 반려묘도 있다. 길고양이가 군관 사내에 몇 마리가 산다.

그중에 제일 사랑을 받는 순둥이. 길고양이라고 하기보다 군 관사 반려묘 같다.

어느 날 아이들이 순둥이에게 먹을걸 갖다 주고 싶다 한다. 아이들의 바람대로 집에 있는 소시지를 몇 개 가져와 순둥이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어디서 보고 나타난 건지 근처에 있던 다른 길고양이들이 오기 시작한다. 뒷걸음질 치던 아이들. 한 마리는 감당하겠으나 두 마리 이상은 무섭나 보다.

고양이는 약고 영특해서 함부로 먹을걸 주면 안 된다고 하던 어머님 말씀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약하기 때문에 나중에 할퀼 수 있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 순둥이는 이쁘게 봐주는 걸로 대신하자. 얘들아.'



기억 속에 남는 한 아이가 있었다.

삼 형제 중 막내 아이인데 그 아이는 형들에 밀려 늘 기가 죽어 생활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많이 바쁘시고 맞벌이 셔서 신경을 많이 못쓰는듯했다. 지금처럼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는 시기에 저 아이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싶어 물어봤더니 셋다 집에서 생활하고 첫째형(6학년)이 동생들 챙기고 밥과 반찬을 알아서 꺼내먹는다고 한다. 안쓰러웠다. 첫째 둘째는 얼굴에 심술이 좀 있었다. 둘 다 덩치도 큰 편인데 막내는 너무나 말랐고 형들한테 잡혀서 사는 것 같았다. 남자들 세계여서인지 좀 거칠기도 하고 막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내가 아이 키우는 엄마라 그런지 그 셋째를 볼 때마다 아픈 손가락 마냥 신경이 쓰였다.  밥도 못 얻어먹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어 아직 어린 둘째, 막내 아이를 데려와 김밥을 말아주곤 했다.

김밥을 마는 내 옆에서 셋째 아이가 말한다. "와. 밥이다."

나는 어쩜 그 한마디가 마음이 아픈지 많이 먹으라며 수박도 잘라주고 아이스크림도 챙겨주었다. 사실 둘째를 챙기기보다 셋째가 안쓰러워서.  그러던 어느 날 그 삼 형제가 이사를 간다고 한다. 군인 가족의 특성상 많이 옮겨 다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근데 내 마음에 울컥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셋째에 대한 내 마음이 너무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집에 머물면서 두 형들 틈에서 살아가는 셋째가 진심으로 안쓰러웠다.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어른인데 속으로 안녕하며 말을 삼켰다.

'수영아. 지금은 형들 틈에서 기도 못 펴고 살고 있지만. 그건 아직 네가 어려서야. 지금 넌 내공을 쌓는 중이야. 너희 형제들 중 네가 제일 잘될 거야. '


군 관사 가족들은 분기별로 많이들 이사 오고 이사를 간다. 

군 관사는 많이들 거쳐 가는 곳이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를 보내고 만나는 게 참 익숙하다. 우리도 그간 참 많은 아이들을 떠나보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이 보이지 않으면 이사를 갔고 새롭게 보이면 또 새롭게 친구가 되어 있다. 서로 알고 있다. 우리가 언제나처럼 이곳에 머무는 건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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