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든 우리가 있어> 김혜정 작가 인터뷰
사람, 동물, 강과 숲은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갈까. 우리와 함께 사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앉아서 눈물만 흘리기보다 그림을 그렸다. <어디에든 우리가 있어> 김혜정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어디에든 우리가 있어> 김혜정 글 그림 | 리리 퍼블리셔 펴냄
숲길을 걷거나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숲의 색깔을 만드는 나뭇잎, 새소리, 강물 위 윤슬, 달콤한 공기가 기분을 전환해준다고 해야 할까. 주위를 둘러볼 틈도 없이 살았던 시간을 위로해준다고 할까. 숲, 강, 동물들은 분명 우리 주위에 있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그 존재를 잊고 산다.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명들이 다정하게 전하는 이야기를 그림에 담아낸 이 그림책은 고요하지만 묵직한 울림을 준다. 한 번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생태그림책이다.
동물권, 생태계 보호 문제에 깊은 관심 갖게 된 계기가 있나?
유기견 ‘자몽이’를 입양하면서요. 개를 좋아했지만 유기동물의 존재는 잘 몰랐는데요. 유기동물을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활동을 하는 개인 블로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렇게나 많은 개들이 버려지고, 결코 안락하지 않은 ‘안락사’를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죠. 막 독립을 한 시점이라 입양은 조금 겁이 났어요. 일단 ‘임시보호’를 신청했어요. 그렇게 ‘자몽이’를 만났고 딱 1주일 후 입양을 결심했어요. 자몽이는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도로 옆 전봇대에 묶여 있었대요. 그래서인지 커다란 자동차가 지나가면 너무 무서워했어요. 그런 자몽이를 보면서 유기동물에 대한 그림을 그렸어요. 포스터를 만들고 데이터를 무료로 배포한다고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그림을 <오보이> 매거진 편집장님이 보신 거예요. 그때부터 <오보이>에 그림을 한 장 두 장 싣게 됐고 지금까지 연재하고 있습니다.
유기동물을 그리다 보니 다른 생명에 조금씩 관심이 갔고 결국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물권, 생태계 보호 모두 인간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이야기인 것이죠. 지구온난화, 동물 멸종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 팬데믹, 미세 플라스틱, 미세먼지, 환경호르몬 등 인간이 저지른 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오고 있어요.
<어디에든 우리가 있어>에는 꽤 진지한 메시지가 담겨있던데, 특히 애착이 가는 그림이나 메시지가 있나?
l 돼지의 마음
우리가 먹는 소시지나 삼겹살은 ‘돼지’라는 이름의 생명이었어요. 돼지는 흙으로 목욕하는 것을 좋아하고 화장실과 잠자는 곳은 반드시 구별을 하는 매우 깨끗한 동물입니다. 그리고 개보다도 높은 아이큐를 가지고 있어요. 감정도 있고 고통도 느낀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남편은 이 그림을 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더라고요. 뭔가 돼지의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 뭉클했어요.
l 우리가 함께 흘러야 진짜 강이다
녹색연합 소식지 <녹색희망>에 4대강을 주제로 그림을 의뢰 받아 실었던 그림인데요. 물을 오염시키지 않으려고 친환경 세제를 쓰고 페트병에 든 생수는 사 먹지 않았고, 할 일은 어느 정도 했다고 자부했던 제가 안일하고 오만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인간이 더럽힌 물을 정화하고 살리는 것은 굽이치는 강줄기와 작은 조약돌과 바위, 모래 그리고 강 속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명들이더라고요. 이 모든 것들과 함께 흘러야 살아있는 진짜 강이에요. 흐르지 않는 강은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물을 더럽히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책에 실리지 못한 것이 있다면?
한 장의 그림으로 많은 내용을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정보를 더 많이 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오히려 호소력이 약해질 수도 있어서 생각을 다듬고 다듬어서 최대한 간결하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김혜정 작가의 그림과 글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하면 그림 한 장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받아들이는 감정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죠. 얼마 전에는 친구의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책을 읽고 후기를 받았는데요. 깜짝 놀랐어요. 온통 ‘슬프다’ ‘미안하다’ ‘내가 지켜줄게’ 이런 말들인 거예요. 어른들이 만든 문제를 어린 아이들에게 나누어 짊어지게 한 것 같아 너무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작가로써 굉장히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환경 오염의 심각성이나 생태계 보호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불편해하거나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대응하나?
그림을 그릴 때 모든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서서 싸우는 성격도 못 되고요. 비겁하다고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되도록 대립각을 세우는 건 피하는 편입니다. 다만 ‘여기 이런 일이 있어요’ 정도만 말하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활용되기를 바라는지?
제가 하는 이야기들은 작은 물방울들 같은 거예요.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땅으로 스미고 실개천이 되고 강이 되어 결국 바다로 흘러 가잖아요. 처음엔 물방울같이 작은 관심에서 시작하여 관심의 범위가 점점 바다처럼 넓게 혹은 깊게 확장되어 가는 것이죠. 기억 한편에 아주 조그맣게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오르고 그 기억이 어떤 형태로든 전개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구 사랑의 마중물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늘 테이크 아웃 잔에 사 먹던 커피를 텀블러로 구매하거나 싸다고 두벌 세벌 샀던 옷을 사지 않거나 한 벌만 산다든지 분리수거조차 하기 어렵게 복합 소재로 과포장한 공산품을 판매하는 회사에 컴플레인을 건다든지요. 마지막은 너무 적극적인 액션인가요?
점점 바램이 커지네요. 호호.
<어디에든 우리가 있어>를 통해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른들이 아프고 슬픈 일을 많이 만든 것 같아 정말 미안해요. 때론 실수를 통해 배우잖아요. 힘이 닿는 데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노력할게요. 아이들이 조금씩 도와주면 더 큰 힘이 될 겁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길 위를 함께 걸어가는 친구니까요. 그리고 작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줘서 진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사고를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도서, 영화 등 작품 리스트.
l 도서
• 김현성 <그린 보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고 느린 만화가게>
• 제인 구달 <희망의 밥상>
l 그림책
• 프랑수아 플러스 <마지막 거인>
• 앨릭스 바질 레이 글, 제니퍼 우만, 발레리오 비탈리 그림<제미 버튼 -문명을 거부한 소년>
l 다큐멘터리
• 황윤 감독 <어느 날 그 길에서> <잡식 가족의 딜레마>
• 루이 시호요스 감독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
• 크레이그 리슨, 민디 엘리엇 감독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
• 알리 타브리지 감독 <씨스피라시>
• 파파 얼릭, 제임스 리드감독의 <나의 문어 선생님>
l 영화
• 마에다 테츠 감독 <P짱은 내 친구>
• 임순례 외 <미안해, 고마워>
• 봉준호 감독 <옥자>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애니메이션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정리 한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