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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May 26. 2023

복잡하고 모순된 사람, 안데르센 | 덴마크 오덴세

나도 그렇다. 

안데르센의 인생은 복잡하고 모순덩어리였다. 


안데르센의 작품들은 그의 인생 이야기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미운오리새끼, 엄지공주처럼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과 같이 동상을 세우는 일에는 역정을 내며,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들은 대부분 거부했다. 원래 그의 꿈은 극작가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의 드라마는 대부분 실패했고 원하지 않았지만 현대 동화를 정립하는 인물이 되고 만다. 


인어공주처럼 아름답고 희생이 가득한 사랑 이야기를 썼고, 실제로도 금방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오래 가지 못했고 못생겼다는 콤플렉스에 짓눌려 살았다고 한다. 장례식에는 그의 피붙이는 (없어서) 아무도 없었다고 적혀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성냥팔이 소녀의 모델이었고, 그만큼 극심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공한 뒤 여왕과 코코아를 마시는 관계가 되었다. "지금은 볼품 없지만 곧 어미처럼 멋진 백조가 되겠지" - 독백을 내뱉는 미운 오리 새끼는 그의 자전적 이야기다.  

그는 실제로 스스로 업적을 기리는 자서전을 3권이나 남겼다. 하지만, 작고 왜소하고 조용하며 가난한 환경으로 생겼던 열등감은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백조가 되었지만, 그는 열등감과 자만심 사이를 늘 오가는 정신 세계를 보였다고 한다. 



아들 둘을 남편과 내니에게 맡기고 덴마크 오덴세로 혼자 일주일이나 학회를 왔다. 

이 도시에선 볼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회의실 사이를 오가며 먼지처럼 다녔다. 

5월말이지만 아직, 북유럽은 쌀쌀하다. 그러다, 오늘 모처럼 해가 났다. 

운동화로 갈아신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세션을 듣다 말고 나섰다.



그리고 오덴세의 유일한 또는 제일가는 볼거리라고 하는 안데르센 박물관을 갔다

30년 전에 "읽었던" 그의 이야기를 최첨단 디자인으로 기획해둔 것을 "보고 들었다". 



그의 인생과 생전 작품을 엮어서 인상적으로 꾸며둔 곳이다. 그의 연애 편지부터 각종 기록, 작품들을 육성 오디오, 예술 작품과 체험 공간으로 구성해두었다. 인생과 문학 작품을 박물관으로 꾸미면 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곳은 그 가벼운 예상을 단단히 깨서 박살을 내고, 기대를 뛰어넘는 곳이다.  


게다가 의외로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양극단을 오가는 복잡한 마음과 그로 인한 모순된 행동을 했다는 안데르센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극적이며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그의 인생과 그 시간들을 메워나간 그의 마음과 노력

어긋난 사랑들과 목표하지 않은 분야에서의 성공. 불안정하고 어려운 과거가 자꾸 생각나지만, 이를 아름다운 언어와 이야기로 승화시킨 그의 노력. 

아직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 어떻게 남겨질지 모르지만, 

나 역시 치졸하지만 때로는 관대하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이따위 인생..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도 어른이니까, 티 내지 않고 성숙하려고 매순간 노력한다. 그렇지만 자주 미숙한 티가 난다. 

재단하지 않고, 나와 비슷한 그런 한 인간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니, 내가 보인다. 그러니, 내가 가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복잡하고 모순된 사람과 그 사람을 둘러싼 관계. 조금 알 것 같았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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