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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을 위해 일합니다

by 단호박

최근, 새로 팀에 합류한 이 선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부 지원금을 많이 따오는 직원에게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말은 짧았지만, 박과장의 마음에는 파문처럼 잔잔한 충격이 일었다.
그 말 속에 깃든 생각이 낯설고도 무거웠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사회복지사의 철학,
서로를 북돋으며 함께 가는 가치가 누군가에겐 ‘비효율’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찔렀다.

박과장은 문득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두터운 성과보고서, 굵은 글씨로 강조된 지원금 액수,
그리고 몇 페이지마다 삽입된 숫자 그래프들.
그 안엔 ‘성과’라는 이름의 무게가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박과장은 언제나 숫자보다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많은 예산을 확보했는가’가 아니라,
‘그 돈이 누구에게 어떤 내일을 만들어줬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결식 우려 아동의 점심 식사,
치매 어르신의 따뜻한 목욕 시간,
발달장애 청년이 처음으로 받아든 월급봉투.
이 모든 장면들이야말로 박과장이 말하는 진짜 성과였다.

사회복지란, 언제나 ‘함께’였고, ‘우리’였다.
누군가 기획서를 쓰면 다른 누군가는 행정적인 절차를 뒷받침하고,
현장의 실무자는 이용자 곁에서 땀을 흘리며 하루하루를 채워간다.
이 협업의 구조는 복지의 본질이었다.

그런데 그 안에 ‘누가 더 많이 따왔는가’라는 경쟁의 잣대가 들어온다면,
균형은 쉽게 깨진다.
‘우리의 목표’는 ‘나의 성과’로 조각나고,
그 조각은 대상자의 삶을 중심에서 밀어낸다.
복지가 ‘숫자의 게임’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물론 박과장도 현실을 안다.
조직은 동기를 부여해야 하고, 뛰어난 성과에 대한 보상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 보상이 단지 ‘인센티브’로만 환원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성과의 기준이 숫자에만 갇힌다면,
우리는 점점 더 '사람'과 멀어지는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박과장은 여러 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어떤 성과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질문은 반복될수록 더 깊어졌고,
답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우리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

성과는, 그들의 삶이 어제보다 더 나아졌는가에 달려 있다.”


언젠가, 이 생각을 팀원들과 나누고 싶다고 박과장은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복지의 방향은 혼자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함께 정해야 할 일이니까.
우리가 바라보는 곳이 같은지를 확인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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