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에서 배운 신뢰

by 단호박

그날 아침, 나는 보고서를 세 번이나 검토했다. 숫자와 문장 하나까지 다듬으며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이번만큼은 완벽하게.”


회의 직전, 프린터에서 나온 따뜻한 종이를 들고 회의실 문을 열었다.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 국장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걸려왔다.


“박과장, 여기 단가가 왜 작년 기준이지?”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나는 얼어붙은 채 표를 다시 확인했다. 분명 어제 고쳤는데—임시 파일을 잘못 연결해 둔 것이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옆자리에서 누군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잠깐만 시간을 주십시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최종’, ‘최종수정’, ‘진짜최종’… 그리고 내가 실수로 연결한 ‘가안_v3.’ 잘못된 연결이 명확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올바른 시트를 불러와 업데이트했다.


“죄송합니다. 수정본 공유드리겠습니다.”


새 표가 스크린에 뜨자 국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시다.”


회의는 다시 흘러갔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한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휴식 시간, 복도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막내가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과장님, 링크 바뀌면 색 표시 나오게 해두면 어때요? 같이 해봐요.”


그 말이 묘하게 따뜻했다. 지적이 아니라 구조 요청처럼 들렸다.
“그래, 같이 해보자.”


우리는 노트북을 펴고 규칙을 만들었다. 외부 링크는 노란색, 구버전은 빨간색, 최종 시트는 파란색. 파일 이름에서는 ‘최종’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날짜와 버전만 남겼다. 헷갈릴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오후, 국장님이 내 자리로 와 말했다.
“아까 상황, 잘 수습했어요. 다음엔 검증표 먼저 돌립시다. 절차가 사람을 살립니다.”


꾸짖는 말이 아니었다. 그 순간, 실수의 무게가 내 개인의 잘못에서 팀의 체계로 옮겨지는 듯했다.


“네, 오늘 체크리스트 초안 만들어서 공유하겠습니다.”


퇴근길, 버스 창밖으로 저녁 노을이 번졌다. 낮의 순간을 곱씹으며 깨달았다. 실수는 창피했지만, 그 끝은 작은 배움이었다. ‘완벽’ 대신 ‘복구’를 연습했고, 숨기기보다 ‘공유’를 택했다. 혼자 떠안기보다 ‘체계’로 나눴다.


집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놓기 전, 휴대폰 메모장에 적었다.
“실수는 사람의 것, 절차는 팀의 것.”
그리고 한 줄을 덧붙였다.
“다음 번의 나는, 오늘보다 덜 흔들릴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새 체크리스트로 회의를 시작했다. 화면 구석에 파란 점이 반짝였다. ‘검증 완료.’ 어제의 떨림이 오늘의 안전장치가 되었다. 그 작은 점 하나가 우리를 지탱했다. 나는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성장은 보통 이렇게 온다. 작게, 그러나 확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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