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말솜씨를 겨루는 자리가 아니다

by 단호박

회의실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누군가는 커피를 들고, 누군가는 아직 켜지지 않은 노트북을 안고 자리를 찾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안건 자료가 놓여 있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농담과 잡담으로 채워져 있었다.


곧 회의가 시작됐다. 사회자가 첫 번째 안건을 소개하자마자 손이 번쩍 들렸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늘 목소리가 큰 과장이었다. 그는 준비해 온 듯 유려한 말솜씨로 주장을 펼쳤다. 단어는 화려했고, 제스처는 과감했다.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노트북에 무언가를 적었다.


나는 조용히 자료를 다시 들여다봤다. 그의 말에는 구체적 근거가 없었다. 겉으로는 그럴듯했지만, 실속 없는 주장일 뿐이었다.


순서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갔다.
누구는 맞장구를 쳤고, 누구는 더 거창한 용어를 덧붙였다.
회의는 점점 ‘발표회’처럼 변해갔다.


하지만 핵심—어떻게 예산을 줄이고, 어떻게 효율을 높일 것인가—는 여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회의가 말 잘하는 자리라면, 도서관 사서나 통역가가 앉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회의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리다.’


잠시 후, 국장님이 내게 시선을 보냈다.
“박과장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모든 시선이 쏠렸다. 잠시 망설였지만, 나는 화려한 언어를 흉내 내지 않기로 했다.


“저는…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칠판에 간단히 키워드 세 가지를 적었다.

비용 절감 필요

현장 직원 불만

대안 프로그램 모색


“이 세 가지가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 같습니다. 각 부서에서 구체적 방안을 한두 개씩만 적어주시면 어떨까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누군가 펜을 들었다.
“외부 위탁비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쪽은 프로그램 시간을 조정하면 인건비가 절약됩니다.”


메모지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화려한 언어는 사라졌지만, 대신 실질적 대안이 쌓여갔다.


회의가 끝난 뒤, 동료가 다가와 말했다.
“과장님은 말은 적게 했는데, 이상하게 제일 많이 정리된 것 같아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회의는 말솜씨를 겨루는 무대가 아니다.
때로는 한마디보다 한 줄의 정리가, 수십 분의 언변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사무실로 돌아와 오늘 회의를 곱씹었다.
회의가 길어지는 이유는 대체로 문제보다 사람을 드러내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똑똑하다’, ‘나는 이렇게 준비했다’는 과시가 쌓일수록, 문제 해결은 뒷전이 된다.


회의는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을 찾는 과정이어야 한다.
말 잘하는 자리가 아니라, 함께 답을 만들어가는 자리여야 한다.


퇴근길 버스 창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어두운 하늘 아래 불빛이 켜진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오늘 칠판에 적었던 세 단어가 떠올랐다.


‘비용 절감, 불만 해소, 대안 모색.’


단순하지만 분명한 그 세 단어가, 화려한 언어보다 더 오래 남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다음 회의에서도,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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