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절차보다 먼저 마음

by 단호박

겨울 바람이 차갑게 불던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데요. 매출은 신통치 않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에는 망설임과 진심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후원 절차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통장 번호, 기부금 영수증 발급, 개인정보 동의서, 세제 혜택 안내….
차근차근 말했지만, 상대방의 목소리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아니, 저는 그냥 주고 싶은 건데…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순간, 멍해졌다.


후원자의 마음은 단순했다.
‘도와주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절차는 복잡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내 손에 남은 것은 체크리스트뿐이었다.
“후원 동의서 확보 여부, 영수증 발급 동의 확인, CMS 신청 안내…”
마음속은 묘한 허전함으로 가득 찼다.


며칠 후, 그 후원자가 직접 사무실을 찾아왔다.
손에는 작은 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거, 많이는 아니지만 받아주세요.”


나는 웃으며 봉투를 받았지만, 곧 절차가 떠올라 다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걸 공식 후원금으로 처리하려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후원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냥 드린 건데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그 눈빛에는 서운함과 피곤함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날 저녁, 사무실 불을 끄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할 건 절차일까, 아니면 마음일까?’


물론 제도는 필요하다.
후원금은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하고, 기록도 남아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후원자의 선한 마음이 지쳐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켜낸 것일까.


몇 주 뒤, 또 다른 후원자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현금이 조금 있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나는 최대한 절차를 간소화해 안내했다.
“어르신, 영수증은 필요 없으시죠? 그럼 그냥 접수만 하겠습니다.”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야 편하지. 사실 이런 거 복잡하면 그냥 안 하려고 했어.”


그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그리고 나는 대답한다.
“제도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늘 아쉽다.


퇴근길, 버스 창가에서 나는 생각했다.
후원은 단순히 돈이 오가는 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순간, 마음이 오가는 과정이다.


만약 그 순간이 서류와 절차 속에 묻혀버린다면, 우리는 본질을 잃는다.


나는 작은 다짐을 했다.
제도는 지켜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을 지켜야 한다.
후원자가 말할 수 있도록,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가 절차보다 앞서야 한다.


다음 번 누군가가 “그냥 주겠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네, 감사합니다. 그 마음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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