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평소 같으면 몇 번을 미뤘겠지만, 그날만큼은 단번에 몸을 일으켰다.
작은 배낭 안에는 여벌 옷과 노트, 그리고 간단한 응급 키트.
‘오늘은 산청으로 간다.’
산청은 나에게 단순한 지명이 아니었다.
태풍 피해가 있을 때마다, 수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늘 우리를 불러내던 곳.
누군가의 집이 무너지고 삶의 터전이 물에 잠기면, 사회복지사들은 자연스럽게 그 길을 찾았다.
버스 창밖으로 여명이 번졌다.
동료들과 마주 앉았지만 대화는 길지 않았다.
“오늘 상황 심각하다던데요.”
“네, 복구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요.”
짧은 대화 뒤, 차 안에는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각자의 마음속에 묵직한 준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코끝을 스치는 흙내음이 달랐다.
젖은 나무 냄새, 뒤엉킨 생활용품, 아직 가시지 않은 비의 흔적.
어르신 한 분이 쓰러진 담벼락 앞에서 멍하니 서 계셨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많이 놀라셨죠?”
그는 대답 대신 젖은 마루를 가리켰다.
“이게 다 허물어졌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네.”
우리는 곧바로 움직였다.
젖은 가구를 밖으로 꺼내고, 흙탕물이 고인 방바닥을 닦았다.
말없이 손을 맞추는 사이,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한참 지나, 옆집 아주머니가 음료수를 건넸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습니다. 혼자였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거예요.”
그 말에 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과, 여전히 넓게 펼쳐진 피해 현장의 무게가 교차했다.
점심 무렵, 마을 회관에 모였다.
밥상 위에는 김치와 따뜻한 국. 피해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둘러앉아 밥을 나눴다.
어떤 어르신은 밥 한 숟가락을 뜨며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늙으니까 이런 걸 다 받아보네.”
그 말에 봉사자가 손을 꼭 잡았다.
“어르신, 우리가 함께하잖아요.”
순간, 밥상 위에 흐르던 긴장과 피로가 조금은 풀렸다.
저녁이 다가올수록 몸은 무거워졌다.
그러나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며, 마음 한구석에서는 묘한 힘이 피어올랐다.
“왜 산청까지 오냐”는 질문을 누군가 던진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이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
버스 창밖으로 저녁 노을이 물들었다.
동료들이 고개를 기대고 잠든 사이, 나는 메모장을 꺼냈다.
오늘 하루를 적으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나는 왜 산청으로 가는가?’
답은 여전히 단순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무너졌을 때, 그 옆에 서 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