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습관이 푸른 지구를 만든다

by 단호박

그는 늘 텀블러를 들고 다녔다.
사무실 탕비실에 놓인 일회용 컵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회의 자리에서도, 현장 방문에서도, 푸른빛이 감도는 금속 텀블러를 책상 위에 올려두곤 했다.


처음엔 단순한 습관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행동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지구를 지키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작은 습관에서 시작하는 거죠.”
그가 웃으며 했던 말은 가볍게 흘려들었지만, 묘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회식 자리에서조차 그는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꺼냈다.
동료들이 농담을 던졌다.
“에이, 그냥 한 번쯤은 괜찮잖아.”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한 번쯤 괜찮다고 생각하는 순간, 지구는 매번 상처를 입는 거죠.”


순간 술잔을 들던 손이 멈췄다.
웃음 섞인 분위기였지만, 그의 말은 묵직하게 남았다.


출퇴근길에도 그는 대중교통을 고집했다.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고, 무거운 자료 가방을 들고서도 지하철을 탔다.


“차를 몰면 편하잖아?” 내가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불편하죠. 하지만 제 불편이 누군가의 편안함이 될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 말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게 들렸다.


사무실 복사기 옆에는 늘 버려지는 종이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모아 양면 인쇄를 하고, 공란은 잘라 메모지로 썼다.


처음엔 귀찮아 보였지만, 어느새 우리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메모지 좀 줄래요?” 대신 “재활용 종이 있어?”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거창한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그저 일상의 작은 습관을 지켜내며,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스러운 영향을 주었다.


어느 날, 마을 환경 캠페인에 함께 참여했다.
아이들과 강가에서 플라스틱을 주우며 그는 말했다.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구가 우리 집이라는 걸요.”


아이들의 눈에는 쓰레기를 줍는 그의 모습이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지구를 돌보는 어른의 표본으로 남았을 것이다.


저녁 무렵, 사무실을 나서는데 그가 창밖을 가리켰다.
노을이 번지는 하늘 아래, 가로수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봐요. 지구는 아직 이렇게 아름답잖아요.”


그의 눈빛은 맑았다.
순간, 내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지구를 구하는 슈퍼히어로는 아니더라도,
작은 선택으로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사람.


그의 지구가 푸른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마음이 푸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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