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스크린에 ‘탈시설 정책 추진 계획’이라는 제목이 크게 떴다.
담당 공무원이 PPT를 넘기며 말했다.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시설을 축소하고, 지역사회로 전환을 돕겠습니다.”
말은 희망적이었지만, 내 마음은 복잡했다.
책상 위에 손을 올린 채, 나는 문득 떠올렸다.
‘정말 그게 가능한 걸까?’
몇 해 전 만난 한 청년의 얼굴이 스쳤다.
발달장애가 있던 그는 낯선 이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익숙한 공간에서는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살아갔다.
“여기 있으면 밥도 나오고, 친구도 있고, 그냥… 괜찮아요.”
체념 같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었다.
만약 그가 갑자기 지역사회로 나간다면?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타고, 월세를 내는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를 맞이할 준비가 과연 사회에 되어 있을까.
며칠 전, 한 어머니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시설을 나오면, 결국 제가 돌봐야 하잖아요.
저도 늙어가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탈시설이 곧 자립으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떨림 속에 담겨 있었다.
물론 시설이 완전한 해답은 아니다.
오랜 벽 안의 삶은 분명 한계를 드러낸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질문 앞에 서 있다.
“어떻게?”
주거, 돌봄, 일자리, 관계.
이 네 가지가 준비되지 않는 한, 탈시설은 또 다른 고립일 뿐이다.
한 지체장애인의 고백이 귓가에 남아 있다.
“여기서는 답답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옆에 있어요.
밖에 나가면, 혼자일까 봐 그게 더 무서워요.”
정책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동료와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어디까지 준비된 걸까?”
동료는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아직 멀었지. 하지만 멈출 수도 없잖아.”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언젠가 가야 할 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그 길이 울퉁불퉁하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퇴근길, 버스 창가에 앉아 생각했다.
탈시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건물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관계망을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그 관계망이 없다면, 탈시설은 벽 없는 감옥일 뿐이다.
나는 다짐했다.
현장에서 들은 목소리를 잊지 않고,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겠다고.
“탈시설”이라는 단어가 희망이 되려면, 그 속에 담긴 두려움과 불안을 함께 품고 준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현장은 준비되었는가? 지역사회는 준비되었는가?
그리고 나는, 준비되어 있는가?’
이 질문이 끝나지 않는 한, 탈시설 논의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