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수에서 만난 신부님은 강의를 이렇게 마무리하셨다.
“사회복지사가 정작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그 순간, 회의실에 앉아 있던 우리는 모두 잠시 침묵했다.
사랑이라니. 우리는 숫자와 보고서, 일정과 계획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는데, ‘사랑’이라는 단어는 낯설고도 멀게 느껴졌다.
연수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곱씹었다.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어르신의 손을 잡아드리는 것일까, 후원자의 마음을 지켜내는 것일까, 아니면 동료와의 갈등 속에서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일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장면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정류장에 서 있던 어르신 옆에 함께 서 있던 순간.
보고서 마감에 쫓기던 밤, 커피를 건네며 묵묵히 지켜주던 동료의 손길.
집에 돌아왔을 때, 아들이 건네준 “아빠 수고했어”라는 짧은 말.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현실 속에서 사랑은 자주 사라진다.
회의실 안에서는 효율과 성과가 사랑을 덮어버리고,
현장에서는 안전과 절차가 사랑을 밀어낸다.
“규정대로 하세요.”라는 말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사랑을 뒤로 미룬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어느 날, 시설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그냥 곁에 있어줘서 고맙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거창한 제도나 프로그램보다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 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사랑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그저 곁에 서 있는 용기였다.
동료와의 갈등 속에서도 같은 배움을 얻었다.
업무 방향을 두고 날카로운 말이 오간 뒤, 며칠 동안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동료가 먼저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힘들죠? 그래도 같이 해봐요.”
그 한마디가 모든 벽을 허물었다.
사랑은 거창한 화해가 아니라, 작은 용서와 기다림 속에 숨어 있었다.
퇴근길, 버스 창가에 앉아 다시 신부님의 말을 떠올렸다.
“사회복지사가 정작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것뿐이다.”
처음엔 추상적으로만 들렸던 그 말이 이제는 조금 이해될 것 같았다.
사랑은 규정과 성과 사이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지만, 결국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다짐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먼저 이렇게 물어보자.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가?’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한, 보고서도, 일정도, 회의도 결국 사랑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밤,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 사랑이 내 일의 시작이자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