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지일터에 다닌다

by 단호박

“어디 다니세요?”


종종 받는 질문이지만, 대답할 때마다 입술이 잠시 굳는다.
친구들 모임에서 누군가는 “나는 ○○기업 다녀”, 또 다른 이는 “나는 공공기관 근무해”라고 자연스럽게 말한다.


시선이 내게로 향하면, 나는 늘 이렇게 답했다.


“아… 나는 복지기관에서 일해.”


대화는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가지만, 내 안에는 늘 묘한 울림이 남았다.
왜 나는 ‘회사원’이라는 말 대신 긴 설명을 덧붙여야 했을까.


돌아오는 길에 곱씹었다.
우리 일터는 단순한 회사라기보다, 사명으로 묶인 공동체 같았다.
보고서와 예산을 다루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때로는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또 어떤 날은 작은 희망을 나누는 일을 한다.


한 후배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과장님, 그냥 우리도 ‘회사’라고 하면 안 될까요?”


나는 대답했다.
“맞아, 회사라고 해도 되지. 다만 우리가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게 목적이라서 그래.”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우리의 자리가, 어쩐지 주변부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는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굳이 회사라는 말이 어색하다고 숨을 필요는 없다는 것.
우리가 하는 일은 분명 ‘노동’이고, 그 노동은 존중받아야 할 ‘직업’이라는 것.
사명과 직업은 대립이 아니라, 함께 갈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젊은이, 당신도 일하느라 힘들지? 그래도 덕분에 우리가 살아요.”


그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회복지라는 일이 세상에선 회사처럼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그분에게는 분명 삶을 지탱하는 ‘일’이었다.


다시 친구들과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넌 요즘 어디 다녀?”


이번에는 조금 다른 대답을 했다.
“나? 회사 다녀. 복지 회사.”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진심이었다.


퇴근길, 사무실 불을 끄며 생각했다.
‘회사에 다닌다’는 말이 어색했던 건 타인이 아니라, 내 안의 편견 때문이었다.


이제는 조금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람을 살리는 회사에 다닌다.
그리고 그 회사는 사람을 살리고 희망을 세우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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