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이 선임과 마주 앉아 국밥 한 숟가락씩 뜨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대수롭지 않은 대화가 흘러가다가, 그는 우리 기관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는 한 여학생 이야기를 꺼냈다. 앳된 얼굴로 성실하게 업무를 돕던 학생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최근에는 임신 소식까지 우연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데요, 왜 채용 전에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알았다면 채용은 안 했을 텐데…”
그의 말에 나는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결혼과 임신은 개인의 삶의 일부다. 그것이 근로 채용의 조건이 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 된다. 혹여 채용 과정에서 그런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 정보가 결정에 영향을 주는 순간 그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나는 조심스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결혼이나 임신은 채용 과정에서 언급할 이유가 없어. 혹시 알게 되더라도, 채용에 반영하는 건 차별이야. 우리가 오히려 조심해야 할 부분이야.”
하지만 이 선임은 고개를 갸웃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배려할 필요가 없을 것 같잖아요.”
그 말은 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배려라는 말이 마치 ‘불필요한 부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배려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특별히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당연히 지켜야 할 태도 아닌가.
나는 순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조직에서의 효율성과 편의성 뒤에, 한 사람의 삶과 권리가 가볍게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종종 ‘업무의 원활함’이라는 명분으로 누군가의 현실을 외면한다. 하지만 그 순간이 쌓이고 쌓여, 차별은 제도처럼 굳어지고 만다.
식당을 나서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결혼과 임신은 누군가가 숨겨야 할 비밀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삶의 일부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것은 기관의 편리함이 아니라, 그 사람의 권리와 존엄이다.’
배려라는 말을 다시 곱씹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고, 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간됨을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날의 점심시간은 내게 작은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사회복지사로서 지켜야 할 방향을 다시 세우게 만든 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