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지원사업에 참여했을 때부터의 전반적인 이야기
처음에는 그리 열심히 참여했던 것 같지도 않다. 그냥 그럭저럭, 한 번 가보자는 마인드였다. 말랑말랑모임터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다. 웰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원예 프로그램을 마치고 월곡역을 향해 가던 중 누군가 말을 걸었을 때도 난 당황한 채 반응했다.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능소니 님 맞으시죠?” 하며, 말랑말랑모임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적 있다고 말을 했다.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인지 역량 탓인지 나는 영 모르겠었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청년이음센터 웰컴 프로그램 때도 난 사회성 떨어지는 언행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참여했던 게 그 중에서도 맨 처음인 OT 1기였다고 하는데, 복지사 선생님들은 나 같은 녀석을 마주치고 어떠셨을지. 6주 과정으로 진행된 웰컴 프로그램은 원예 프로그램으로, 식물을 심고 가져가는 게 종종 있었는데 늘 식물을 가져가기를 거부했으니. 아니 그 이전에, 처음에 면담할 때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 이’에 대한 예외사항을 필요로 하던 게 나 말고 더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면담할 때는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고 해놓고는 11월 언젠가부터는 문자로 안내를 안 해주고 전부 카카오톡으로만 안내해주었다는 사실은 다른 청년 분으로부터 전해듣고 상당히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자기네들이 안내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놓고는 이미 다 안내되었고 모집 마감이라 추가로 받아줄 수 없다고 했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아직도 불만을 가지고 있다. 다 지난 프로그램, 심지어는 다 끝난 사업에 대해서도 응어리가 남아 있구나, 싶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다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정말 대놓고 투덜거렸던 것 같다. 그 중 일부는 OT 다음 기수 때부터는 반영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상황과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로즈마리가 참 맛있었다는 건 기억난다. 처음으로 내가 기증 안 하고 받아간 식물이었다. 한창 장마철이라 습기에 약한 허브들이 너무 빨리 죽어버린 건 유감이었지만.
5월 말에 시작된 웰컴 프로그램은 6월 말에 끝났다. 그 뒤로 식비 지원 프로그램 청년 맞맛상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었다. 8월에는 권역 센터에 처음 가게 되었는데, 나는 집에서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성북 센터로 배정되어, 권역을 왜 이렇게 묶었나 싶었다. 다행히 그 다음 해의 청년기지개센터에서는 광진 권역에 배정되어 이동 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말이다. 작년에 중앙 센터의 역할과 권역 센터의 역할 구분이 애매하고 겹치는 활동도 많아서 말이 좀 나왔다는데, 올해는 어떤 식으로 변경될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청년이음센터 때는 좀 더 구분이 명확했던 것 같은데. 소규모 원데이 클래스 같은 건 권역에서 진행하고 중앙에서는 좀 더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격주로 열리는 청년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재료가 한정되어 있어 예약이 필요한 것도 있는 반면 따로 신청하지 않고 가도 되는 것도 있어서 좀 더 편하게 갔던 것 같기도 하다. 인원 제한이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 중일 때도 공간 자체에는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옆에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던 것에 비해 청년기지개센터에서는 권역에서 진행해도 될 것까지 중앙에서 하느라, 선착순에 밀려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사람이 종종 있던 느낌? 어차피 참여하기 쉽지 않으니까 점점 더 권역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함께 할 수 없으니 따로 센터에 놀러 오는 사람도 줄어든 것 같고 말이다.
청년이음센터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격주로 한 번씩 열리는 청년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듣긴 했지만 거리 상의 진입장벽이 있어 찾아가지는 않고 있었는데, 8월 중순 건대입구역 근처에 광진점이 오픈한다고 하여 가 보았고, 그 뒤로 광진점은 종종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분위기도 어색하고 해서 가방에 들고 다니던 얼룩 능소니 인형이나 쪼물딱대고 있었다. 그러다가 말을 걸어주시는 분이 계셔서 함께 이야기를 조금 나눴다. 그러다보니 한쪽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던 다른 청년 분도 자연스레 함께 하게 되고 좀 더 상호작용을 할 수 있었다. 역시 그 모든 상호작용은 시작이 어려울 뿐인 것 같기도 하고. 그로부터 몇 주 지난 뒤에 자조모임 형태의 동아리 활동이 시작되었고 그 첫 회의 날 내가 신청한 운동 동아리 청년은 나까지 두 명 밖에 안 왔는데, 그 다른 한 명이 그 때 그 심리학 공부를 하던 청년이었다는 건 회의를 마칠 때쯤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가끔 그렇게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하긴 했지만 좀 더 마음을 열고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기 전보다 센터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이어졌고, 동아리 사람들 위주이긴 했지만 다른 청년 분들이랑도 어느 정도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아리 정기 모임이 수요일 오후였는데 마침 수요일에 격주로 청년공간 광진점이 운영되어 모임 끝나고 함께 광진점으로 이동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연말이 되었을 때는 친하다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안면을 트고 알고 지내는 청년 분들이 몇몇 생겼다. 정작 동아리 사람들은 동아리 지원 기간이 끝나자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지만. 프로그램을 마치고 그대로 집에 돌아가기 아쉬웠던 사람들, 이대로 돌아가면 모든 게 환상처럼 사라지고 다시 고립은둔 상태의 자신을 마주할 것만 같아 두려웠던 사람들, 그리고 프로그램을 쫒아 가느라 대화를 나눠볼 시간이 적었기에 소통할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들이 모여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 가거나 식사라도 하고 가던 게 몇 번 반복되다가 그렇게 된 것 같다. 청년공간 근처에 살거나 멀리 이동하는 데 거부감 없는 분들은 거기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꽤나 친해진 모양이고 말이다.
청년기지개센터 활동을 하면서도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 중 3분의 2 정도가 청년이음센터 출신 청년이었던 것 같다. 말랑말랑모임터에서도 청년이음센터에서도 처음에는 전부 낯선 사람들뿐이라 익숙해지는 데까지도 시간이 걸리고 어느 정도 경계하며 지내는 기간이 길었지만, 청년기지개센터에서는 OT 날부터 익숙한 사람을 마주치기도 하고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사람들도 한두 명씩 알아가며 그럭저럭 괜찮은 상호작용을 할 수 있었다. 따로 연락처는 교환하지 않았지만 프로그램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고, 소셜 미디어 계정을 서로 팔로우하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을 때에도 근황을 전해듣는 사이가 된 이들도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의 나에게 어느 정도의 고립감이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구체적으로 답하기는 어렵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작년에는 일상 회복을 위한 청년마중팀(아마 마중물이 되고자 하여 지은 이름 아닐까), 관계 회복을 위한 청년동행팀(청년들끼리 함께 하는 것에 중점을 둔 이름인 것 같다), 그리고 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청년이음팀(좀 더 세상과 연결짓는 느낌?)으로 팀 구분이 있었는데, 이전까지의 내가 청년동행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면 지금은 좀 더 청년이음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느낌이다. 물론 올해는 팀 구분이 없어질 예정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지만. 듣자하니 저런 취지로 팀을 나누긴 했는데 잘 흘러가지 못했다는 것 같다. 밖에 나오기 어려워하는데 동행팀에 배정된 사람들은 자꾸 프로그램에 노쇼를 하고, 밖에 나갈 수 있는데 마중팀에 배정된 사람들은 좀 더 모이고 싶어하고, 그런 괴리감이 있었다나. 그리고 이음팀은 너무 고립감 해소보다는 취준에 치우쳐져 있어서 프로그램 참여하는 데 회의감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모쪼록 올해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