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게 살아가고자 하는 나를 방해하는 나의 특성들
내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칠 때 누군가는 행복을 찾아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면 그 또한 발버둥일지라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든다. 때로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하는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클라이밍을 하러 간다고 아침에 일어나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과수면은 줄어들었지만 그렇게 깨어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지는 못 하는 것 같다. 뭐라도 해야지 하다가도 하루가 지나고 보면 뭘 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래서 올해 초부터는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기록으로 남겨보기 시작했는데, 뭘 했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린 빈칸이 참 많더라. 아예 빼먹은 날도 종종 있고 말이다. 일이든 공부든 고정적인 일정이 있으면 좀 나으려나 싶기도 하고. 기술교육원 다니다 보면 좀 괜찮으려나. 늘 그렇게 무언가에 참여하는 동안에는 그럭저럭 괜찮게 지내는데 끝난 다음이 문제다. 당장은 기술교육원이 있지만 그것이 끝난 후에도 괜찮을 수 있도록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하루하루를 잘 살아나가는 법을 익혀야 할 것 같다.
내가 가진 고질적인 이슈 중 하나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식 섭취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없고 짜증은 나고 됐어, 필요 없어, 안 먹어. 약을 먹어야 해서 아침저녁 식사를 꼬박꼬박 해야 하는데 가족이 눈앞에 주먹을 휘두르며 식사는 어떻게 할 거냐고 해서 홧김에 안 먹는다고 해버린 적도 있다. 그 상태가 지속되다 보면 스스로도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게 느껴지는데 썩 유쾌하지 않은 감각이다. 그러면 또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악순환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 집에서 살기 싫어지기도 하고, 그냥 살기 싫어지기도 하고. 심하면 아무 이유 없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기도 한다. 그랬다가는 목표 체중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텐데. 라고는 해도 체중 변화가 별로 없는 체질이긴 하다. 작년에 게이너 섭취로 5kg 정도 늘었다가 한 통 다 비운 후 2kg 정도 도로 내려가고 이전보다 3kg 정도 늘어난 상태로 유지 중이다. 많이 먹든 적게 먹든 웬만하면 그저 유지되더라. 그래도 열심히 섭취하는 게 좋긴 하겠지. 열심히 먹고 열심히 움직여서 뚠실한 녀석이 되고 말 테다. 말로만 그러는 게 아니라 실천도 해야 할 텐데 말이다.
그치만 음식을 준비하고 섭취하고 뒷정리를 하는 그 모든 과정이 번거롭다. 센터에서 하는 요리 챌린지도 참여해 봤지만 간단하다고 주장하는 전자레인지 요리마저 나에게는 어렵더라. 요리 챌린지에 참여하며 받은 전자레인지 요리 레시피북에서 할 수 있을 만한 요리를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요리 챌린지 인증 사진으로는 친구가 인터넷에서 찾아준 전자레인지 계란찜을 제출했다. 적당히 넣고 섞어서 돌리면 되는 녀석이다. 저 레시피 북의 대부분의 레시피와는 다르게 재료도 다 냉장고에 있을 법한 것들이고, 없는 건 생략해도 괜찮았다. 다른 요리는 여전히 못 하겠어서 요즘도 라면이나 냉동식품으로 식사를 때우는 일이 많다. 월수금에는 청년기지개센터 우리집 공간의 스낵바에서 때우기도 했는데, 당분간은 기술교육원에서 제공되는 식사로 한 끼는 제대로 된 식사를 확보할 수 있겠다.
요리만 어려워하는 건 아니긴 하다. 난 사람들이 어떻게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며칠 입고 다닌 외투 주머니에는 무언가의 껍데기들이 한두 개는 있기 마련이고, 청소한 지 조금 지난 방에는 쓰레기가 굴러다니기 마련이다. 날 잡아서 정리를 하려고 하면 10L 봉투를 반에서 하나 정도 채우는 것 같다. 물론 재활용품은 또 별개다. 그건 종이가방 두어 번 채울 정도로 나오는데 치우는 중간중간 처분하고 와서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방 정리를 하고 나서 이번에야 말로 쓰레기 없는 방을 유지해야지 하는 다짐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요리도 그렇고 청소도 그렇고 집안일에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언젠가 이런 쪽으로 일머리가 있는 녀석과 동거를 하며 역할 분담을 적절히 하면 좋을 텐데 하는 안일한 꿈을 가지고 있다. 저런 건 동거인이 하고, 난 뭘 하냐고? 글쎄,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빨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건 그냥 세탁기한테 시키는 것뿐인가? 빨래를 개는 것...도 할 수는 있는데 사실 옷장보다는 2단 폴 행거 한쪽에 설치해 놓고 쓰고 싶긴 해. 결국 집안일 잘하는 녀석에게 얹혀살고 싶다는 소리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전화 예약을 못 하는 것도 여전하다. 그래도 “연락 바랍니다”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연락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예약이 필수인데 인터넷 예약이 안 되고 전화 예약만 받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고민하다가 결국 신청을 포기하는 일도 종종 있다. 일상적인 상호작용도 전화 통화로 하는 것보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훨씬 편하다. 누군가는 텍스트만으로는 뉘앙스를 파악하기 어렵기에 전화 통화가 더 낫다고 하지만, 뉘앙스고 뭐고 방금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지가 안 될 때가 많아 차라리 뉘앙스를 포기하더라도 명확한 텍스트를 받고 싶다. 실제 대면했을 때는 그 정도까진 아닌데 전화 통화를 하면 상대의 말을 잘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보니 그걸 기피하게 되는 것 같다. 음질이나 그런 이슈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상대의 말이 뚜렷하게 들리긴 하는데 어느 순간 말을 놓치게 된다. 청각에만 의존하다 보니 다른 감각으로 들어오는 기타 자극에 의해 주의가 분산되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것도 전보다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역시 어렵다.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어려워하는 문제인 것 같긴 하다. 사람과 상황과 이것저것에 대한 변수가 너무 많으니 어려울 수밖에. 때로는 사랑도 우정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나로 하여금 센터 청년들과 유의미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해 준 녀석이 더 이상 내 친구로 있을 수 없을 것 같다며 나를 떠날 때, 난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다. 24년 전의 어느 노래처럼, 차라리 네 곁에 내가 없어지는 게 널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주 후 다른 친구로부터 나의 문제 행동을 지적받은 후에야 내가 그날 이후로 인간관계 측면에서 어긋난 언행들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걸 인지한 후로는 이전과 같은 상태를 이어나가고자 했지만 결국 내 마음을 열게 한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발생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마감이 정해진 일을 처리하는 게 아니었다면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른 청년 분들이 왔을 때 하던 것을 덮고 대화를 하곤 하는 녀석이었는데, 당장 급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 누가 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있더라. 지금은 그 친구와의 일은 좀 해소되었지만, 예전만큼의 인간불신과 경계는 아니어도 당분간은 친구 같은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긴 힘들 것 같다. 언젠가 또 다른 계기가 생긴다면, 그땐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맞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