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진 면 위주로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가지고 있는 어려움
여러 가지로 나아진 부분도 많은 반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와중에도 개선되지 않은 것도 있고, 전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한 것도 있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마주하게 된 것도 있고, 드물게 새롭게 생긴 문제도 있다. 그 모든 불안과 공포가 나로 하여금 세상 앞에 온전히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두렵고, 두렵고, 두렵다. 때로는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면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그 감정에 매몰된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말로 정리되지 않는다.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
사실 우리가 가진 문제라는 게 하루이틀 사이에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문제”가 아니다 같은 소리는 기각한다. 상담사들의 그런 발언이 얼마나 가볍게 들리는지 알고 있는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문제인 거지 사실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등등의 이야기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지만 되려 반발심이 들게 하는 발언일 뿐이다.) 대부분의 경우 프로그램 한두 번 참여했다고 갑자기 유의미한 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가 변화의 폭이 줄어드는 사람도 있고 처음부터 언제나 미세한 변화만 있는 사람도 있고 별 효과 없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확 와닿는 게 있는 사람도 있고 그 개인차가 크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얘기해 보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순간에는 나아진 것 같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동안에는 즐거움을 느끼지만 돌아서서 집에 가는 순간 언제나처럼의 우울과 무기력이 쏟아진다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모든 게 일시적인 완화일 뿐이고 결국엔 혼자 있으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알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아늑하고 벗어나기 싫은 은신처로 작용하는 본인의 집이 다른 누군가는 고립과 은둔의 공간으로서 부정적인 기운을 주는 공간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집에 존재하는 가족들은 불편하기만 하다. 가족들이 있을 땐 불편함을 느끼고 그들이 없을 땐 적막함을 느끼는 딜레마 속에 살아간다.
대부분의 순간에는 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연말에 설문조사를 할 때도 그렇게 작성했지만, 그 이후에 안녕하지 못한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지난겨울에 진행된 청년기지개센터 끝자락에 동행팀 챌린지 프로그램에서 그걸 좀 크게 느꼈다. Zoom으로 화면을 켜놓고 진행하는 홈트 챌린지였는데, 마이크를 켜놓고 웃고 떠들고 심지어는 욕을 하거나 가족과 대화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방 아무 데나 비춰도 되니까 화면을 켜놓으라는 말을 무시하고 비디오를 켜지 않는 사람까지는 그래도 피해를 주지는 않으니 그러려니 하는데, 강사 님 소리가 묻힐 정도의 소리를 낸다거나, 동작 설명을 하는데 다른 사람 화면으로 넘어가게 소음을 유발하는 사람들은 솔직히 거슬렸다. 대부분의 날들은 조금 거슬리긴 해도 넘어가 줄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뉴스 방송을 크게 틀어놓는 사람이 있고 음악을 켜놓는 사람이 있는 날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Zoom 화면 너머에서 무슨 일이 있든 간에 강사 님은 대처하지 않고 설명만 하고 있고, 매니저 님은 도중에 상황 파악을 하셨는데 공동 호스트 권한이 없어 대처해 주시지 못했다. 그날은 스트레스 반응이 너무 세게 와서 도저히 참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채팅으로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이탈했다. 괜찮아지면 돌아갈 생각으로 끄지는 않았는데 결국 그날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진정되지 않아 함께 하지 못했다.
요즘은 주변에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청년이음센터 시절에는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강하고 도전적이었던 청년이 이제는 많이 가라앉았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고 말이다. 그리고 가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이들도 보인다. 청년기지개센터 참여서약서에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서명했으니 얘기는 안 꺼내도, 언제 그 경계를 넘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사람도 가끔 있다. 어떤 사람은 보면, 그는 왜 그렇게까지 내몰려야만 했을까, 싶기도 하고. 나랑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기보다는 지인의 지인 정도로 상호작용하다가 그 사이에 있는 지인을 통해 인스타그램 맞팔을 하면서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 사람인데, 분명 함께 아는 지인이 여럿 있었고 자조모임에 참여하며 어느 정도 사람들의 무리도 있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혼자 남더라. 이제 와서는 괜히 다가가서 아는 척 하기도 애매하고 해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그 사람 말고도 몇 명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결국 그들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기에 그저 그렇게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용히 지나치기에 그들의 입장에서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지난주에 진행된 OT를 시작으로 청년기지개센터 활동도 다시 시작될 테니 다들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참여서약서에 있는 내용은 대체로 까먹긴 했는데 그나마 기억나는 게 자살과 자해에 대한 내용이다. 언급도 실천도 하지 않는 것. 사실 자해 같은 거 안 들키면 그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이만치 올라오지만 참아본다. 자해를 할 때 사계절 내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최적의 사각지대 중 하나로 손목시계 아래가 있는데,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저 소리를 처음 했던 게 아마 고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시계는 아니고 미밴드를 착용하고 다녔다. 하여간 요즘은 그러지 않으니 내 손목에 대한 의심을 하지 않아도 된다. 기본적으로 물건을 부수면 물질적인 피해가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에 대한 보상을 해주어야 하며, 사람을 때리면 그 이상의 법적 책임과 진료비 등등의 이슈가 있기에 분노 표출은 나 자신에게 하는 게 낫다는 게 그 당시의 주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불안과 분노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갈 때 통각을 통해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요즘은... 글쎄. 마땅히 표출하고 해소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뿜어져 나오는 공격성만 가둬놓은 느낌이라 썩 좋지는 않다. 근육통이 그나마 건강하게 통각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정도? 하지만 그걸로는 뭔가 충분하지 않다. 적절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