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3일 일요일 갑진년 갑술월 경술일 음력 9월 11일
언젠가 에너지의 흐름은 물과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리고 그 물을 어떻게 운용하는지는 개개인의 차이가 있다나. 세부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면 더 많은 분류로 나눌 수 있겠지만, 크게 나누면 에너지를 강처럼 사용하는 자와 댐처럼 사용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 흔히 외향성과 내향성을 비교하면서도 언급되곤 하는 비유다.
강처럼 사용하는 자의 에너지는 끊임없이 흐르고 있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꾸준히 에너지를 소비해야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나는 이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에너지를 충분히 소비하지 않으면 고인 물이 점점 썩어가듯이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 반면 댐처럼 사용하는 자의 에너지는 충분히 축적되었을 때 가장 안정적이다. 에너지를 소비하면 휴식을 통해 새 에너지를 쌓아야 다시 소비할 수 있게 되는 이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휴식을 취하지 않고 에너지를 소비하다 보면 댐이 말라가듯이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
나의 경우 명백히 전자에 해당한다.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면 신체적인 피로는 풀리겠지만 정신적인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외출 없이 집에서만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소위 집순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집 안에 몇 날 며칠을 있어도 좋다고 하지만 난 그렇지 않기에, 학생 때는 이동하는 동안의 걷기로 최소한의 에너지 소비를 이루어내며 아무 일정 없어도 늘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것이 학생 시절의 내가 삶을 버티는 방식이었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지 못한 채 겉돌더라도 동아리방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편이 방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나았다. 물론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서울시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기 전의 나는 그럴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친구 관계를 맺지 못해 억지로 만든 인간관계가 동아리 스터디였다. 내가 가진 소소한 전공 지식으로 다전공생과 전과생, 편입생 등을 위한 스터디를 진행하자 조금이나마 주변에 사람이 생겼다. 나의 대학 시절 빈말로라도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전부 그 스터디 참가자들이다. 물론 그들은 졸업과 함께 내 삶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방학 때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 같은 걸 하기보다는 스터디 방학특강을 진행하곤 했는데 (커리큘럼 꼬여서 수업을 못 따라가는 학생들을 위해 그들이 수강신청하지 못한 선수과목을 가볍게 훑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 에너지를 쏟아붑는 게 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 나에게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은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을 만들어 내는 기간이었다. 나의 정신 상태를 그나마 연명시켜 주던 시간들을 잃었다. 대학생 때의 나를 기억하는 이들 중 일부는 학교 출입이 가능했던 2020년 상반기에 이미 내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음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출입 통제가 이루어지고 그런 삶이 정착되어 있던 나의 마지막 학기, 2021년 상반기에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로 사람들을 대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길을 터서 강을 흐르게 만들고, 이미 썩어버린 부분을 싹 다 쓸어버리기 위한 시간을 좀 갖다가, 과하지 않은 정도의 물만 꾸준히 흐를 수 있도록 조정하고자 한다. 아직은 조정 단계로 넘어가지는 못했고, 이것저것 쓸어버리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정신적으로는 개선되어도 체력적으로는 힘들 수 있는데, 일시적인 현상이다. 조만간 정신과 체력 사이의 적정 지점을 찾아 조정해야지. 분명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