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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다니 Nov 01. 2016

10월과 11월 사이

떠도는 몸과 머무는 마음 사이



10월의 마지막 날, 간만에 서울에 올라왔다. 월요일 휴무로 몇 번의 허탕을 쳤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 몇 개의 이야길 나누고, 호박을 들고  얼굴에 피흘리며 돌아다니는 홍대의 인파를 겨우 뚫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잠을 자기로 했으나 덜컹거리고 건조한 기차 위에서 곤히 잠들기는 힘들었다. 혹시나 하여 잔잔한 음악을 귀에 꽂아보았으나 잡생각만 많아질 뿐- 에라이 떠도는 글자들이나 붙잡아보기로 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몇 주가 지나고 이제 좀 숨을 돌리려니 어느덧 11월이다. 유난히 끔찍했던 9월과 부지런히 싸돌아다녔던 10월이 지났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너무 좋아서였을까. 제주에 일년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그날 이후로 내내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 그동안 아무리 좋은 여행지를 다녀보아도 살고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동하여 싱숭생숭했던 적은 없었는데 이번엔 꽤 달랐다. 이러다가 정말 문득 소리없이 떠나있을지도 모르겠다.


9월 초, 뜻밖의 접촉사고로 난생 처음 후유증을 다 앓아보고 입원은 커녕 바쁜 탓에 곧장 떠나야 했던 제주도 출장에서부터 시작이었을까. 머리가 깨질 듯하고 속이 울렁거려 찾았던 함덕의 어느 약국과 호텔 근처의 허름한 식당에서 먹었던 정성스런 된장찌개, 요란스럽지 않은 에메랄드빛 해변과 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봉우리, 그리고 시골 구멍가게보다도 작아서 모르는 일행들과 등을 맞대고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만 했던 어느 펍까지- 그 모든 것이 눈에 밟혔다.


어쩌면 나는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걷고 싶은 게 아니라 비비적대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어느 누구도 나를 말리지 않았지만 어쩐지 자꾸 떠나기가 망설여졌던 것이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고단한 여행길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즐거움보다 그냥 누군가의 일상 어딘가에서 낯선 익숙함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12시가 지났다. 오늘부터는 11월- 서른 밤을 자고 나면 나는 또 이 날들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게 될까. 벌써 대전이다. 잡생각 덕분에 깨어있어 다행히 부산까지 안 갔다. 아빠가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가 왔다. 부디 오늘부터는 조금이라도 효도하는 딸이 될 수 있기를. 그만 아프고 조금만 싸돌아다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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