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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 May 01. 2016

아무래도 불명확한, 그 사랑에 대하여

강의실 한 켠에 앉아 늘 무심한 눈으로 강단을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자꾸만 눈길이 가던 사람, 같은 조가 되고 싶어 다짜고짜 반장을 찾아갔다. 처음, 같은 조가 되던 날 어찌나 기쁘던지, 내색하지 못할 미소를 갈무리하고 그를 마주봤다. 2010년 그 여름,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그의 행동을 나도 모르게 따라하곤 했다. 그와 말 한마디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면 나의 어깨는 한껏 늘어져 올라올 생각을 안했다.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지곤 공상에 빠진다. 어떤 날은 그와 내가 사랑을 이루는 상상을 하곤 발버둥 치곤 했고, 어떤 날은 그에게서 대차게 차이는 상상을 하며 베갯잎을 적시기도 했다. 희망과 절망, 그 모든 상상의 끝은 비참함이었다. 현실이 되지 못한 사랑 앞에서 늘, 좌절하곤 하는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마음처럼 온전히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 있을까. 사랑 앞에서 늘 난 약자였다. 전전긍긍하고, 사랑에 빠질까 미리 벽을 쳐둔다. 벽을 사이에 둔 나와 당신. 그 벽이 쌓이고 쌓여 우리는 머나 먼 곳으로 멀어지곤 했다. 열병처럼 짝사랑을 앓고 내가 한 다짐은 이것이었다. 더 이상 짝사랑은 하지 않겠다는 것. 그건 새해의 삼일천하적인 다짐보다 더한 실패를 예견한다. 사랑은 호락호락 하지 않다. 사랑이 쉽다면, 이 세상의 천편일률적인 절망과 슬픔은 어쩌면 신화 속에 존재하는 이론이었을지도 모른다. 칼릴 지브란은 사랑의 불명확성에 대해 일찌감치 예견했다. 그는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사랑이란 그대들에게 영광의 관을 씌우는 만큼 또 그대들을 괴롭히는 것이기에. 사랑이란 그대들을 성숙시키는 만큼 또 그대들을 베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심지어 그대들 속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햇빛에 떨고 있는 그대들의 가장 부드러운 가지들을 껴안지만, 한편 사랑은 또 그대들 속의 뿌리로 내려가 대지에 엉켜 있는 그것들을 흔들어 대기도 하는 것이기에.” 


사랑이 우리를 힘들게 할 지라도 우리는 평생 사랑이라는 울타리, 혹은 함정에 빠질 운명에 놓여있다.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그, 사랑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방법을 고심 중이다. 그래야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불명확한 사랑이면 어떤가. 사랑은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을. 나의 감정이 살아있다는 증거인 것을. 존중하지 않고, 그것을 재고 따지는 사랑은 사랑이라 할 수 없다.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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