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렁이의 하루 Ep. 5 <뚜벅이 네버 다이>
어느 가을날, 뚜벅이는 크나큰 결심을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렇게 길바닥에서 허송세월을 보낼 순 없다. 매번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의선에 분노를 삼키는 일은 더 이상 그만하고 싶다. 약속에 다녀오느라 왕복 3시간을 길에서 허비한 거울 속 내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젠 정말 운전면허를 딸 때가 된 거야.
그 길로 바로 파주에 있는 운전면허 학원에 전화했다. 교통이 애매한 학원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걱정했는데,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기까지 한다며 엄청난 서비스를 자랑하듯 전화로 속삭였다. 시작이 좋다. 그 자리에서 학원 등록을 마쳤다.
처음 수업을 듣던 날, 노란색 봉고차가 집 근처 병원까지 데리러 왔다. 학창 시절 이후로 셔틀버스를 타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내가 탑승한 이후로도 탄현부터, 파주까지 다섯 명의 수강생을 더 태우고 나서야 봉고차는 학원에 도착했다.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에 몸이 여러 번 덜컹거리는 경험을 하고 나니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지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노란색 봉고차에 실려 파주와 일산을 오갔다. 그래도 이론교육부터 필기시험, 그리고 장내 기능시험까지는 꽤 수월하기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러니 도로 주행 시험까지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감이 차오르는 건 당연했다.
도로 주행 시험은 면접관을 옆자리에 태우고 정해진 길을 주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신호를 잘 지키는지, 깜빡이는 잘 켜는지, 안전에 유의하며 주행하는지 등등 면접관은 옆에 앉아 깐깐하게 체크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면접관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정도로 긴장이 되지 않아서, ‘아, 이대로라면 진짜 한 번에 면허를 딸 수 있겠군’ 싶었는데 방심하자마자 사달이 났다.
“어어, 에헤이! 스탑 스탑. 저기 옆으로 차 대세요”
분명 직전까지 농담을 주고받던 선생님이 나에게 정색하며 말했다. 신호 위반으로 시험에 탈락 했다는 거였다. 긴장 하나 없던 나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뭐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노란 불일 때 가셨잖아요. 멈출 줄 알았는데, 왜 가셨어요? 어쩔 수 없어요. 내리시고 운전대 저한테 넘기세요”
너무 자신감이 넘쳤던 걸까. 아니면 공부가 부족했던 걸까. 한심해도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도로 주행 한 번 떨어진 게 무어라고 며칠 내내 우울한 나는 또 왜 이리 꼴 보기 싫은지. 나는 왜 할 줄 아는 게 없지, 왜 남들 다 하는 운전 하나 못 해서 이 나이 먹도록 이런 패배감을 맛보고 있는가. 아, 대학생 때 엄마가 학원비 대줄 테니까 따라고 할 때 그냥 딸 걸.
두더지보다 깊게 땅을 파다가, 현실을 직시했다. 2차는 반드시 붙는다! 5만 원이 넘는 시험료를 또 지불할 순 없지. 그렇게 며칠 뒤 두 번째 시험을 보러 갔다. 첫 번째 시험을 맞이할 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운전대를 잡은 손이 진동하듯 떨려왔다. 새로운 면접관이 “왜 이렇게 떠세요”라며 걱정을 해올 만큼.
덜덜 떨면서도, 굳은 다짐을 한 덕인지 실수 없이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다. 면허를 따고 며칠 뒤엔 엄마 친구분에게 운전 연수를 받기도 했다. 엄마는 무작정 나를 데리고 자유로에 나섰다. 나는 운전석에 앉히고 엄마는 뒷좌석에, 그리고 엄마 친구인 아저씨는 조수석에 앉아 나의 운전대를 함께 잡고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핸들을 잡는 것부터 익숙하지 않은 나로 인해 차가 미세하게 오락가락,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창문에 달린 손잡이를 꼬옥 붙잡고 중간중간 ‘끄응.’ ‘커억.’ ‘허억.’ 같은 추임새를 넣어 나를 더 긴장하게 했다. 주차 연습까지 하고 돌아오는 길, 너무 긴장을 많이 한 탓이었을까, 가물가물 졸음이 밀려왔다. 결국 실토했다. “저, 자꾸 눈이 감기려고 해요”
함께 운전대를 잡고 운전하던 아저씨는 나를 보며 황당함을 감추지 않으셨다. 죄송해요. 저는 왜 이럴까요.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얼른 운전대 바꿔주라고 했다. 그제야 엄마 손에서 꼭 붙잡혀 있던 손잡이가 떨어졌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몸을 내리는 엄마의 몸이 조금은 삐그덕거렸던 것도 같다.
그 후로 3년이 지났지만, 운전대 한 번 손에 잡지 않았다. 면허가 있으면서도 뚜벅이를 자처하는 중이다. 언제 어렵게 딴 면허증이 제 역할을 해낼지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뚜벅이도 나쁘지 않단 생각이 든다. 특히 이런 날. 선유도에서 홍대 가는 603번 버스를 탔을 때 말이다.
버스가 곧 양화대교를 건너기 시작하면 승객들의 눈은 휴대폰이 아니라, 네모난 창밖으로 휙 휙, 돌아간다. 때마침 일렁이는 한강의 물결과 하얀 뭉게구름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귀에 이어폰 하나 꽂고 멍하니 창밖 풍경에 몸을 맡기는 순간에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본다. 뚜벅이의 삶이 꼭 불편하기만 한 건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 세상 모든 뚜벅이들의 귓가에 소심하게 소곤거리고 싶어진다. 우리 기죽지 맙시다. 뚜벅이 네버 다이···!
⊙ 덜렁이의 하루 (인스타그램 @dadashour)
⊙ 글 : 다다 (인스타그램 @ddidawn)
⊙ 그림 : 서콩 (인스타그램 @se0c0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