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일요일 아침, 서연정 주방에는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이 테이블 위에 길게 드리웠고, 먼지가 그 빛줄기 안에서 은빛으로 춤을 추었다.
진안은 상에 놓인 밥그릇을 휘저으며 광운에게 말을 꺼냈다.
“광운아, 우리도 하루는 쉬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쉰다고?”
광운은 젓가락으로 멸치를 집으며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응. 서연정이 오래 가려면 말이야. 읍내 돌아보니까 월요일에 문 닫는 데가 많던데, 우리도 월요일에 쉬면 좋을 것 같아.”
광운은 고개를 들지도 않고 어깨만 으쓱했다.
“네 맘대로 해. 난 월요일이든 화요일이든, 일이 있으면 나가니까.”
진안은 웃었다.
“하여간 넌 소처럼 일한다니까.”
대화는 거기서 끊겼다. 하지만 진안의 마음은 계속 흔들렸다. 쉬는 날 하나쯤 있어야 도하리를 제대로 보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곳의 계절을 느낄 수 있을 텐데. 가게 안에서만 사는 건 도하리에 내려온 의미를 반만 쓰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새벽, 진안과 광운은 읍내 장에서 장바구니를 가득 채워 돌아왔다. 바구니에는 아직 텃밭에서 나오지 못한 갓 딴 오이, 파릇한 양배추, 통통한 달걀, 그리고 커다란 얼음주머니가 담겨 있었다. 주방에서 밀면 육수를 차갑게 식혀 두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가게 앞에 들어서자, 두 사람은 동시에 발을 멈췄다. 아직 문도 열지 않았는데, 서연정 앞 벤치에 아주머니 넷이 앉아 있었다. 머리는 뽀글뽀글하게 파마했고, 옷차림은 화려한 꽃무늬와 반짝이 스카프, 발에는 번쩍거리는 굽 높은 샌들이었다. 시골 마당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아니라, 마치 읍내 뷰티살롱 앞 대기석 같은 풍경이었다. 아침 햇살에 그들의 귀걸이와 목걸이가 반짝이며 번뜩였다.
광운이 낮게 중얼거렸다.
“손, 님인가?”
진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쪽에 제일 화려한 분이…. 대장 같은데.”
“맞아. 미자 아주머니. 읍내에서 미용실 하시는 분.”
미자 아주머니. 머리칼은 마치 솜사탕처럼 부풀어 있었고, 화장은 짙어 눈가 주름에 파우더가 잔뜩 끼어 있었다. 입술은 지나치게 붉었고, 눈썹은 문신으로 까맣게 그려져 있어 표정이 굳어 보였다. 옷은 유행을 따라간다기보다 오히려 시대에 밀린 듯 촌스러웠지만, 본인은 누구보다 당당했다.
아주머니들이 하하호호 수다를 떨다 진안과 광운을 보자, 미자 아주머니가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손뼉을 탁탁 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 어머! 진짜 잘생겼네? 잘생긴 총각이 장사한다 해서 내가 눈호강 좀 하려고 왔다니까. 너무 빨리 왔나?”
진안은 벌써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지만,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아닙니다. 아직 준비가 덜 돼서요. 더우니까 안에서 기다리세요.”
서연정 안은 곧 아줌마들의 수다 소리로 진동했다. 마룻바닥이 울릴 정도의 웃음소리가 터졌고, 높은 목소리가 유리창을 떨게 했다.
진안이 물을 내주며 말했다.
“오늘은 시원한 밀면을 준비했어요. 여름에 드시면 좋아요.”
“어휴, 뭐 아무거나 줘. 지나가는 개밥만 아니면 다 먹어.”
서로 맞아, 맞아 외쳐대는 아주머니들이 깔깔 웃자, 진안의 웃음이 어색해졌다. 진안이 자리를 떠나자 미자 아주머니의 입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제 들었어? 서울서 신혼부부가 이 근처에 집 짓고 있다지 뭐야. 근데 말이야, 그 사람들은 도하리가 재미없어서 곧 도망갈걸? 벌써 얼굴도 못 봤는데, 뭐 뻔한 거 아냐?”
“어머머, 정말?”
“아이고, 도시 사람들은 다 그래. 여기 물은 못 먹어. 다 흙냄새 난다고 튀지.”
“아이고 세상에.”
다른 아주머니들이 연신 손을 입에 대고 호들갑을 떨었다.
소문은 흘러흘러 새로운 이야기를 낳았다. 누군가의 딸이 어디로 시집갔다는 이야기, 옆 동네에서 누가 돈이 어디서 났다는 이야기. 진안은 조용히 웃으며 들었지만, 귀담아 듣고자 하지 않았다. 도하리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람처럼 흘러 다녔으니까. 진안은 그저 요리에 집중할 뿐이었다.
매끈하고 윤기 나는 면발이 스테인리스 사발 위에 한 덩이마다 올라갔다. 갓 뽑아낸 면발은 차가운 물에 몇 번이고 씻겨내어 탄력을 가득 머금었고, 젓가락 사이에서 탱글하게 살아 움직였다. 그 위로 살얼음을 동동 띄운 육수가 그릇 안에서 은빛으로 빛났다. 멸치와 다시마, 소고기를 오래 고아 낸 뒤 차갑게 식힌 국물은 깊고 맑았다. 밤새 얼려 둔 육수는 국물 사이사이에 얼음 조각이 부서져 시린 청량감을 더했다. 면이 육수를 만나자, 마치 하얀 비단실이 풀린 듯 잔물결을 따라 퍼져나갔다.
가장 위로 곱게 채 썬 오이가 아삭한 초록빛으로 얹히고, 고춧가루 양념이 국물 위에 붉은 수채화처럼 번졌다. 삶아 반으로 가른 달걀은 노른자가 선명한 노란빛을 띠며 중앙에 올려졌다. 마지막으로 참깨를 솔솔 흩뿌리자, 담백한 향이 고소하게 퍼졌다.
그릇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여름의 냉기가 서연정 안 공기까지 얼려 놓는 듯 했다. 땀이 흐르던 광운도 그 시린 향기에 잠시 이마를 식혔고, 진안은 두 손으로 그릇을 들어 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름은 이 맛으로 버티는 거지.”
광운과 함께 준비한 밀면이 상에 올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주머니들은 여전히 대화에 정신이 팔려 젓가락을 잡지 않았다. 진안이 조심스레 말했다.
“밀면은 불면 맛이 없어요. 한 입 드시면서 이야기 나누시면 더 맛있을 것 같은데요?”
미자 아주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머머, 내가 총각 잘생겨서 넋을 놓고 있었네. 정신 좀 봐라.”
미자 아주머니가 서둘러 젓가락을 들어 면을 한 가닥 집어 올렸다. 다른 아주머니들은 “시원하다” “맛있네” 하며 웃었지만, 미자 아주머니만은 첫입을 삼키자마자 눈물을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니, 내가 왜 이래. 왜 울어….”
그녀 스스로도 당황한 듯 재빨리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그 순간 옆 아주머니가 입을 열었다.
“에이구, 또 그 인간 생각나서 우는 거지 뭐. 있잖아, 바람나서 여편네랑 딸 버리고 도망간 그 인간. 온 동네가 다 아는데.”
순식간에 공기가 싸늘해졌다. 미자 아주머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이 여편네가 미쳤나! 그 얘길 왜 꺼내!”
“엄마마?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그 주둥아리 확 꼬매버려!”
“자기가 이렇게 드세니까 남편이 도망가지!”
순식간에 싸움판이 벌어졌다. 진안과 광운이 급히 두 팔을 벌려 두 여자를 떼어냈다. 머리채라도 잡을 기세였다. 미자 아주머니를 도발한 아주머니가 이내 성질을 못 이기곤 씩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다른 아주머니들이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렸다. 결국 서연정 안에는 미자 아주머니만 남았다.
한바탕 지나간 난리 통 속 진안은 미자 아주머니에게 물 한 잔을 내밀었다.
“물 좀 드세요.”
광운은 묵묵히 간판을 내렸다.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뜻이었다. 미자 아주머니는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눈시울을 붉히며 시키지도 않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내 팔자도 기구하지. 남편이 어린 계집애랑 바람이 나서, 나랑 딸 버리고 가버렸어. 혼자 남아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웃고, 그냥 살아냈다니까.”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혼자 딸내미 키운다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배운 게 미용이야. 이 손이 다 파마약에 까지고, 칼날에 베이고. 나, 그렇게 악독하게 살았어. 나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얼굴 가득 화장이 번져 눈가가 검게 얼룩졌다.
“근데…. 내가 아까 눈물 흘린 건 그 인간 때문이 아니었어.”
진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네 음식이, 이 밀면이…. 우리 엄마가 해주던 밀면이랑 너무 닮았어. 엄마가 여름마다 밀가루 반죽해 뽑아주셨는데, 그 맛이었어. 그 맛을 다시 만날 줄이야….”
미자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새로 해드릴게요. 마저 드시고 가세요.”
진안이 벌떡 일어서 그릇을 치우려 하자, 그녀는 냉큼 손으로 막았다.
“놔둬. 그냥 이거 먹을래. 그때도 이렇게 먹었어. 엄마가 천천히 먹으라고, 체한다고 불어 터진 거 줬었어.”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불어 터진 면발을 입에 욱여넣었다. 국물은 점점 더 짙어졌다. 그 짙음 속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그녀의 아픔 그 뒤로 반짝이게 빛나던 그녀의 어린 시절과 어머니의 그림자가 되살아났다.
그날 밤, 진안은 일기장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펜은 종이 위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책장 위에 놓인 할머니와 찍은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마침내 짧게 적었다.
그리움은,
없는 것을 찾는 마음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믿었던 맛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다.
눈물이 간을 대신하고
추억이 육수가 되어
불어 터진 면발에도
사람이 살아난다.
오늘, 미자 아주머니를 보며
그리움이란 것이
얼마나 밥상 위에서
뜨겁게 피어나는지 알았다.
그리움을 담는 요리는
허기를 채우는 게 아니라
살아가야 할 이유를 되살린다.
주방 한쪽에 아직 가시지 않은 밀면 육수 냄새가 은은히 남아 있었다. 오늘 하루, 서연정은 단순한 밥집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불러내는 그릇이 되었다. 진안은 일기장을 닫으며 생각했다. 그리움이 밥상이 되는 곳, 그것이 바로 서연정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