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월요일 아침, 서연정의 주방은 불이 꺼져 있었다. 전날 밤까지의 열기가 빠져나간 뒤라 집 안 공기는 차분했고, 창문을 통해 들어온 여름 볕이 탁자 위로 길게 번져 있었다. 먼지가 빛 속에서 천천히 흩날렸다.
진안은 그 볕 아래 앉아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있었다. 숟가락이 그릇 벽을 건드릴 때마다 “찰칵, 찰칵” 작은 소리가 났다. 반대편에는 광운이 있었다. 그는 오늘도 여느 때처럼 다섯 가지 반찬을 차린 밥상 앞에 앉아있었다. 멸치볶음, 달걀말이, 김치, 시금치나물, 그리고 된장국. ‘아침은 꼭 밥이어야 한다.’는 고집스러운 사람.
“쉬는 날인데, 어디 나가?”
진안이 시리얼을 한입 머금으며 물었다.
“아니. 오늘은 딱히.”
광운은 짧게 대꾸하며 밥을 꾸역꾸역 씹었다.
“그럼 나랑 텃밭 가꾸기 어때?”
진안의 눈빛은 기대감으로 반짝였지만, 광운의 눈은 곧 일그러졌다.
“텃밭 지키미는 지난번으로 끝난 거 아니었나.”
“에이, 혼자 하기 벅차잖아.”
“냅둬. 할 일은 만들면 되니까.”
광운의 말투는 건조했다. 진안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정을 부렸다.
“진짜 안 도와줄 거야?”
광운은 잠시 생각하더니, 밥을 크게 한 숟갈 떠서 삼킨 뒤, 얼굴에 잠시 그림자를 드리우며 말했다.
“어디 좀 다녀오려고.”
진안의 숟가락이 잠시 멈췄다. 어디? 하고 묻고 싶었지만 삼켰다. 이 집의 룰. 서로의 과거는 묻지 않는다. 그 침묵이 오히려 광운의 목적지가 과거와 엮여 있음을 직감하게 했다.
혼자가 된 진안은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텃밭으로 나갔다. 한낮도 아닌데 햇살은 벌써 뜨겁게 내리쬐었고, 땅 위의 공기가 일렁였다. 구부린 허리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토마토 줄기를 매만지고, 오이 넝쿨을 올려주고, 가지의 잎에 달라붙은 벌레를 떼어냈다. 손바닥에 흙이 묻고, 수건이 금세 젖었다.
그때, 마당에 낯선 소리가 요란하게 파고들었다. “부르르릉-” 외제차 특유의 낮고 굵은 엔진음. 마당에 먼지가 일더니 반짝이는 검은 차 한 대가 서연정 앞에 멈췄다. 크롬 휠이 눈부시게 빛났고, 시골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광택이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도하리의 색과 전혀 맞지 않았다. 남자는 반팔 셔츠 위에 값비싼 브랜드 로고가 선명했고, 바짓단은 얇은 슬랙스로 말끔했다. 얼굴은 선글라스로 가려 반쯤 감정이 보이지 않았지만,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태연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훑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옆의 여자는 더 눈에 띄었다. 큼지막한 귀걸이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고, 플라스틱 향 가득한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셀카 모드로 얼굴을 비추며 이리저리 각도를 바꿨다.
진안은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혹시 어떻게 오셨나요?”
여자는 들뜬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 마을회관에 물어봤더니 여기 밥집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오늘은 문이 닫힌 것 같네요?”
남자는 말 대신 서연정 간판과 창문을 구석구석 살폈다. 마치 경찰이 사건 현장을 조사라도 하러 온 사람 같았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요.”
진안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바로 얼굴을 찡그리며 남자를 쳐다봤다.
“뭐라고? 우리 이렇게 힘들게 찾아왔는데? 자기야, 나 배고파 미치겠어.”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 건성으로 말했다.
“어차피 식당인데 뭐라도 있겠지. 돈은 낼 테니까 뭐라도 만들어줘요. 읍네 다 돌아봤는데 다 문 닫았더만.”
“그러니까!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야. 다 같이 쉬어버린다니.”
여자는 투덜거렸다. 진안은 속으로 작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 피곤한 손님이네. 그러나 배고프다는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건 그의 철학에 맞지 않았다. 진안은 말했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여자는 주방 앞에서 남자에게 포즈를 잡으라며 부탁하고, 남자는 건성으로 몇 장 찍어주었다. 여자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서연정의 벽, 테이블, 천장을 찍어댔다. 마치 맛집 인증샷이 아니면 밥도 삼키지 못하는 듯했다.
“근데 메뉴판 없어요?”
여자의 목소리는 요구하듯 높았다. 진안은 부드럽게 대답했다.
“네. 저희는 메뉴를 정해두지 않고, 그날 준비된 재료로 음식을 만듭니다.”
여자가 눈을 크게 뜨더니 남자에게 속삭였다.
“자기야, 여기 오마카세래. 시골판 오마카세.”
남자가 피식 웃었다.
“시골에서 무슨 오마카세야. 대충 먹을 만하면 다행이지.”
말끝에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진안은 개의치 않은 듯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미리 깎아 물에 담가둔 감자가 눈에 띄었다. 그들의 말투를 곰곰이 떠올리며, 진안은 이런 사람들에게는 이게 어울리겠다 하고 결심했다. 감자옹심이. 투박하지만 정성을 알 수 있는 음식.
주방에서 칼이 도마를 두드리자 규칙적인 리듬이 방 안에 퍼졌다. 감자가 잘게 잘릴 때마다 젖은 전분 냄새가 은은히 번졌다. 곱게 갈린 감자는 뽀얗게 속살을 드러냈고, 체에 눌러 물기를 짜내자 은빛 물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손바닥에서 살짝살짝 굴려 만든 옹심이는 마치 작은 공처럼 매끈하고 단단하게 모양을 갖췄다.
육수는 멸치와 다시마가 푹 우러나 바다의 향을 머금은 채 맑고 깊은 빛을 띠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 옹심이를 하나씩 떨어뜨리자, 처음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가 곧 통통하게 부풀며 물 위로 떠올랐다. 뽀얗게 오른 김이 피어올라 고소한 감자의 향과 바다 내음을 함께 실어냈다.
국물이 끓을수록 옹심이의 겉은 쫄깃하게 단단해지고 속은 촉촉하게 부드러워졌다. 투명하게 비치는 옹심이 사이사이에 감자의 알갱이가 은은히 살아 있어, 숟가락을 대면 탱글탱글한 탄력이 느껴졌다. 맑은 국물과 고소한 감자의 조화가 입안 가득 퍼질 순간을 예고하듯, 주방은 포근한 향으로 가득 차올랐다.
“맞다, 우리 이제 이웃이에요.”
여자가 갑자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진안이 잠시 고개를 들어 물었다.
“이웃이요?”
“네! 어제 이사 왔거든요. 언덕 위에 새로 지은 집 있죠? 거기 우리 집이에요.”
“아….”
진안은 미자 아주머니가 했던 소문 한 자락을 떠올렸다. 서울에서 내려온 신혼부부.
“서울에서 내려오기 힘드시진 않으셨어요?”
“아니에요. 저 시골살이가 로망이었거든요! 자연 속에서 힐링, 이런 거. 도시에선 절대 못 하는 경험이잖아요.”
여자의 말투는 달콤했지만 얄팍했다. 시골살이가 ‘로망’이라니. 이 땡볕에서 잡초 뽑아본 적이 있을까. 진안은 속으로만 웃었다.
감자옹심이가 담긴 뚝배기가 부부 앞에 놓였다. 국물은 뽀얗게 우러났고, 옹심이는 투박하게 굴러가듯 앉아있었다.
“이게 뭐예요?”
여자가 대뜸 얼굴을 찌푸렸다.
“감자옹심이라고 합니다. 감자를 갈아 만든 음식이에요. 한 번 드셔보세요. 로망으로 느끼시는 시골의 맛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여자는 젓가락을 들며 망설였다. 한입 떠서 입에 넣자, 의외의 탄력과 담백한 맛에 눈이 번쩍 커졌다.
“자기야, 이거 맛있어! 완전 쫀득쫀득해!”
남자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뭐, 먹을 만하네.” 그러나 곧 그릇 바닥을 긁어내는 소리가 났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여자가 다시 진안을 향해 돌아섰다.
“사장님, 다음엔 메뉴 뭐예요? 저희 트러플 파스타 같은 거 먹을 수 있나요? 서울에서는 자주 먹었는데 여기선 그런 게 없네요.”
남자가 진안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선글라스를 쓰며 코웃음을 쳤다.
“자기야, 여긴 그런 거 없어. 재료나 구하겠어?”
여자가 깔깔 웃으며 남편 어깨를 툭툭 쳤다.
“아이, 자기두. 사장님 기 죽잖아. 잘 먹었어요~ 시골 맛, 색다르네요.”
그들은 그렇게 떠났다. 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언덕을 올라가 사라질 때까지, 진안은 마당에 서서 멍하니 바라봤다.
진안은 주방으로 돌아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아직 뚝배기에서 피어오른 김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 쉬는 날을 이렇게 보내다니.”
진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불현듯, 할머니의 말씀이 귀에 되살아났다.
‘누구에게나 네 요리는 열려 있어야 해, 제영아. 하지만 네 요리를 깔보는 사람을 만들진 마라. 네 요리의 가치는 네가 만드는 거야.’
그날 밤, 진안은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 서연정에 낯선 사람들이 왔다.
겉만 화려한 그들의 말과 웃음은
텃밭의 흙냄새와는 닿지 못했다.
감자로 빚은 작은 옹심이는
투박해 보이지만
오래 손이 간다.
껍질을 벗기고, 갈고, 짜내고,
국물에 담가야 비로소 빛이 난다.
허세는 겉을 채우지만,
배고픔은 결국 속을 채운다.
그들은 이 맛을 잊고 떠나겠지.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작은 뚝배기에 깃든 손길이
시골의 진짜 오마카세라는 것을.
진안은 펜을 내려놓고 밖을 보았다. 달빛에 텃밭의 잎사귀가 반짝였다. 어쩌면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도하리를 떠날 사람들. 그러나 이 흙냄새와 이 맛만은 그들의 기억에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