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라는 짐승과 초보 조련사
한때, 회복이란 한 줄기 빛처럼 뻗어나가는 선이라고 믿었다. 자해를 멈추고, 감정을 조절하고, 상처를 이해하게 되면, 그 뒤엔 무너지지 않는 ‘정상 상태’가 기다릴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되돌아감의 연속이었다.
2년 반이 넘는 동안의 상담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내 안에 폐허처럼 무너져 있던 감정의 잔해들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렸다. 그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되었다. 뙤약볕 아래 맨몸으로 서 있는 느낌. 한겨울 맨손으로 눈을 치우는 느낌. 무너진 마음을 다시 올리는 건 그만큼 뜨겁고, 그만큼 시렸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이 결국 나를 더 안전한 길로, 궂은날에서 반짝이는 하루를 조금이라도 늘려주는 일이라 믿었으니까. 정말 그렇게 믿었다.
그랬는데, 위기는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예고 없이 찾아왔다. 감정이 조금씩 차분해지고, 나 자신이 괜찮아졌다고 믿던 순간, 감정은 다시 폭풍처럼 날뛰었다. 이제는 안정을 찾았다고, 이제는 예전과는 다르다고, 조금은 믿고 싶었던 그때, 나는 다시 무너졌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이게 뭐야. 또 처음이야? 다시 이 시작점이야?’
화가 났고, 지쳤고, ‘그 모든 회복의 시도가 무의미했나?’ 싶어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담을 받고, 시간이 흐르고, 내가 살아온 기록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회복은 선형이 아니라 나선형이었다는 것을. 똑같은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여도, 그건 사실 조금 더 높이 올라온 다음의 ‘같은 위치’였다는 것을.
예전처럼 무너졌지만, 이번엔 그 무너짐을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고, 예전처럼 감정에 휩쓸렸지만, 이번엔 그 감정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했고, 예전처럼 절망했지만, 이번엔, 그 절망 안에서 다시 시작할 마음이 남아있었다.
나는 감정이라는 짐승을 아직 완전히 길들이진 못했다. 그건 아직도 날뛰고, 때때로 나를 물어뜯으려 든다. 나는 마치 초보 조련사 같다. 어쩔 땐 감정을 달래는 데 성공하지만, 어쩔 땐 그 감정에 말려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그 짐승은 여전히 크고, 빠르고, 예측할 수 없지만, 나는 이제 그걸 무서워만 하진 않는다. 어느새 나는 감정이라는 짐승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처음엔 마구잡이로 쌓았던 벽돌이 감정 한 번에 와르르 무너졌지만, 이제는 조금 더 단단히, 조금 더 깊이, 한 장 한 장을 쌓는 법을 안다. 회복은 그렇게 요령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무너진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제 다시 그 감정이 들이닥칠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안다. 나는 다시 올라갈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처음과는 다르게. 이번엔, 다르게.
그 믿음 하나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나는 다시, 또 처음처럼. 그러나 이번엔 다르게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