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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승호 Jun 22. 2024

8세, 혼자 다녀온 아이스크림 가게

#좋은 샘의 육아일기 9

2024. 2. 14


5시. 유치원 하원시간. 유니의 얼굴은 싱글벙글이다. 

"아빠, 내일 나 졸업식 한다."

"그렇게 좋아?"

"물론이지. 내일 앞에 나가서 트로피 받는다. 나 너무 떨려."

분명히 떨린다면서 입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얼굴은 스스로가 자랑스러운지 연신 웃음꽃이 피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새삼스럽게 유니의 얼굴을 다시 한번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유니가 자란 만큼 아빠의 주름도 늘어났다는 걸 유니는 알고 있을까? 지금은 눈치채지  못하겠지. 아빠는 아주 조금씩 늙어가고, 너란 아이도 아주 조금씩 성장하기 때문이니까. 아빠가 늙고, 네가 커가는 이 세월이 아빠는 너무 좋다. 늙음이 가져다주는 슬픔보다 유니를 통해 얻게 되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매일 경함하고 있어서 그것으로 족하기 때문이지. 제잘 대면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쏟아 내는 네가 그저 아빠의 삶에 작은 빛이 되어 주어서 아빠는 날마다 너에게 빚지는 삶을 사는 것 같아. 너는 모르겠지만.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내리려는데,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겠다고 하는 너. 마침 카드가 들어있는 작은 가방이 있어서 건네주었더니 네가 하는 말.

"아빠. 여기 아파트 앞에 서 있어. 나 혼자 사가지고 올게."

"혼자 갈 수 있겠어?"

"당연하지. 나 혼자 갈 수 있어. 절대 따라오지 마! 아빠 뭐 먹을 거야?"

"폴라포 포도맛으로 사줘!"

"알았어. 나랑 엄마는 월드콘으로 사야지."


차문을 쾅 닫고 껑충껑충 발을 공중에서 부딪치며 신나서 뛰어갔다. 유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기특함과 서운함이 교차했다. 어느새 훌쩍 커서 혼자 힘으로 가게도 다녀오려고 하는 너를 보면서 잘 크고 있구나 하는 기특한 마음이 들다가도 다른 한쪽 마음에서는 꼬물꼬물 아기 같았던 모습이 하나둘 사라져 가고 아빠의 품을 떠날 준비를 조금씩 하는 것 같아서 서운함이 몰려왔다.


안전 노이로제에 걸린 나는 유니의 뒤를 밟았다. 살금살금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리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혼자서 뭐가 그리 신나는지 주변에 뭐가 있는지 연신 두리번거리고, 도로를 건널 때도 성큼성큼 건너고, 아이스크림 가게 문을 열 때도 씩씩하게 열어져 쳤다. 조금 후 '띠링!' 핸드폰에 문자가 한 통 왔다. 무사히 카드 결제를 한 모양이다. 이윽고 세 개의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멀리서 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차가운 아이스크림 세 개를 봉지에 담지 않고 가슴에 안고 오는 게 아닌가. 


집 앞에서 유니와 접선. 

"왜 비닐에 담지 않고 왔어?"

"비닐이 없었어. 차갑기는 하지만 그냥 들고 왔어. 가게 안에 오빠 두 명이 싸우고 있는데 무섭기도 하고 해서 빨리 나왔어."

"그랬구나. 무서웠겠다."

차가운 기운이 손에 전달되지 않도록 아이스크림을 가슴에 안고 걸어오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사진으로 담았다. '오늘의 모습을 아빠는 기억하고 싶어.' 어쩌면 사소한 일상이지만 유니 아빠로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그래서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매 순간이 기쁨이고 감사다. 세상에 그 어떤 것이 존재만으로 이렇게 기쁨을 줄 수 있을까?

아이스크림 가슴에 품고 온 유니

이제 이틀 후면 유치원 졸업. 그리고 3월 4일 초등학교 입학한다. 오늘은 아빠가 불안해서 뒤를 밟았지만 언젠가는 그럴 필요가 없어지겠지? 

"아빠. 제 방에서 나가 주세요."

이런 말을 들을 날이 곧 오겠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지. 정말 그러기 싫은 데. 그런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해맑게 웃으며 지금처럼 영원히 아빠 품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때문에 아빠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유니와 함께 할 거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이 유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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