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가 자녀를 앞세워 보내는 일

by Dan Lee

11월의 출근길이었다.

여느 출근길과 마찬가지로 버스 맨 뒤의 왼쪽 끝에 앉았고 창밖에 마주 달리는 차들이 가득하여 역시나 출근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출근길이 길지 않은 관계로 자주는 아니지만 읽을거리를 끝내지 못했을 때 가끔 시간을 이용하곤 한다.

역시나 마음의 위안을 위해 정기 구독을 하면서 아주 간간히 읽고 있는 리디 전자책으로 책을 읽어가고 있었다.


확실한 건 머리가 복잡하고 업무가 좀 빡빡하게 돌아갈 때는 책의 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냥 고민 없이 선택 가능하고 다양한 콘텐츠들이 넘쳐나는 유튜브가 편하기 하다. 그러나 습관이 될까 봐 유튜브의 짧은 동영상을 보면서 출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나 스스로가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있으면서, 가끔 상황에 따라 글을 읽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글을 한 줄 한 줄 소화하면 읽어야 하는 책의 경우 흥미를 가지고 진도를 나가는 것이 어려워서 좀처럼 여유가 없을 때는 쉽게 읽어지는 책을 선택하게 된다. 독서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 정말 부럽고 존경스럽다.


내가 선택해서 읽을 책은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라는 종양내과 전문의의 환자와의 동행을 진솔하게 적어 내려 간 내용이 담긴 책이다.

암으로 소천하신 장인어른, 여전히 회복 중이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한 의사의 수기가 담긴 책을 고르게 되었고 이런 류의 책은 챕터별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고 가끔 전문 용어가 나오긴 하지만 술술 잘 읽히는 편이다.


작가에 대한 소개나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적으면 소개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특히 하나의 장면에서 나의 상황과 감정을 건드렸던 내용에 대해 간단히 나누려 한다.

위에서 얘기한 대로 버스의 맨 뒤의 왼쪽 끝 앉아서 중년의 아저씨가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상황으로 눈을 위아래로 뜨며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 했으나 결국엔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혹시나 흐느낌이 나올까 봐 입을 굳게 다물고 억지로 참아가며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는 나의 모습을 다시 기억해 본다.


그 순가의 감정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억지로 글을 적어 놓았고 이제 좀 글로 옮겨보려고 한다.


버스에서 한참 눈물을 참으라 고생을 했다.

암환자 소천한 아이를 품에 앉고 새벽을 보낸 엄마

자녀의 온전히 좋은 곳을 가게 하려고 모든 것을 태움, 신발이 없어서 하나 사서 태워.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챕터의 많은 부분은 어느 정도 인생을 삶아간 이들에 대한 내용으로 암이라는 병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의 여러 상황들, 항암을 하면서의 과정들, 죽음의 과정 등 동일한 암이라는 질병을 두고 사람마다 너무나 다른 행동들에 대해 소소히 적어가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의사가 느낀 소외는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간접 경험의 순간들이었다.


나의 감정을 흔든 이야기를 이어가 보면, 그건 소아암에 걸린 아이와 엄마의 모습에 대한 글이었다.


그 아이의 경우는 주어진 삶의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그건 준비를 해야 하는, 아니 준비가 가능하지 않은 영역이지만, 어머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끝내 호흡은 멈추었으나 온기가 가득한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

이른 아침 창가에 햇빛은 비추고 침대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아이를 품에 가득 안은 엄마의 모습,

하늘로 떠난 아이의 상태에 대해 바로 간호사에게 알릴 수 없었고 점검 시간에 되어 방문한 간호사 역시 그 모습을 보고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방은 나갔고,

그 누구도 상황 전달을 하지 않은 어머니의 행동을 지적할 수 없는 뭐... 그런 거...


그냥 그 일련의 모습이 너무도 눈에 선해서,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이 나에게 느껴져서,

그 출근길 버스 안에서 감정이 복받쳤다.


그리고 출근 내내 내 감정을 힘들게 했던 내용들이 그 뒤에 더 있었다.


자녀를 앞세워 보낸 부모들이 자녀의 유품을 정리를 못하고 꽤 긴 시간을 그대로 보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유품의 정리하게 될 때 유품을 정리한다는 것은 대부분 소각하는 것인데 그 유품들 가운데 유일하게 새로 구매해서 다시 정리하는 것이 '신발'이라는 것이다.

투병으로 병원 생활 중이거나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 그들이 남긴 슬리퍼나 달아빠진 운동화를 보고 왜 원하는 것을 못 사줬나 뭘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았는지 한탄한다는 것이다.


중학생 딸아이를 가진 아버지로서 공감되어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들이었다.


자녀라는 존재가 그런 것 같다.

앞세운 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70을 훌쩍 넘기신 우리 부모님도 같은 마음이실 거라 생각한다.

뇌경색 이후 열심히 회복 중이신 아버지가 나를 보시면 세상 행복한 미소를 하시는 모습이 계속 겹쳐 보여 감사하면서도 참으로 슬프다.


어느새 입시를 생각하며 공부하며 내신과 수능을 준비하는 아이,

시험 결과에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그 과정을 견뎌내는 아이,


현재의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는,

슬픔 가운데 있는 분들과 나눌 수 있는,

30분이 안 되는 출근길 버스에서 삶은 많은 부분을 공부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버스 안의 사람들은 모바일을 보며 그 밖에 세상과는 단절되어,

중년 아저씨의 눈물을 부끄럽게 할 시선은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록을 위한 인스타(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