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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15. 2022

20. 멈춰있던 인생이 시동을 걸었다.

  아이가 오고 맞는 첫 주말에 친정 식구들이 집으로 모였다. 환영 파티도 할 겸 이미 지나버린 아이의 백일잔치를 작게나마 하고 싶어서였다. 이 날은 아이를 가족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날이기도 했다. 시누이에게 미리 물려받은 백일 드레스를 입히니 정말이지 천사가 하늘에서 갑자기 우리 집으로 뚝 떨어진 것만 같았다. 센터에서 이미 아이의 백일잔치를 하고 사진도 찍어 액자에까지 넣어 챙겨주셨지만, 그 사진엔 우리가 함께 있지 않았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나름 발도장도 남기고, 사진도 찍고 싶었다.

  남동생은 누워있는 아기의 손바닥 위에 자기 손가락을 살포시 얹어 인사했다. 결혼하자마자 조카 생각이 났다며 원목 주방 놀이 소품을 사 왔던 동생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내 마음이 찡했다. 조카님 오래 기다린다고 너도 수고했다. 엄마는 고양이를 집에 들인 뒤로는 처음 집에 방문하셨다. 엄마는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하셨다. 난임 끝에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가 아이를 대신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크셨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믿지 않으셨었다. 아이가 오니, 그제야 우리 집에 온 엄마가 고양이와 대면 대면한 모습이 퍽 우스웠다. 엄마는 아기가 순둥순둥 한 데다 얼굴도 하얗다, 손발도 복스럽다며 아이를 반기셨다. 백일상을 꾸미고, 엄마가 해오신 백일 떡으로 아이의 백일 사진을 함께 찍었다.

  가볍게 식사를 하고, 엄마를 배웅하는 길에 우리도 첫 외출을 나섰다. 남편이 아이를 안고 집 근처 공원을 걸었다. 바람도, 경치도 모두 맞춤 맞았다. 아기를 안고 공원 내 오솔길을 걷는 일. 참 별것 아니지만 우리에겐 특별한 이 일을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지. 남편도 나도 별말 없이 '좋다.'를 감탄사처럼 연발했다. 남편에게 매미처럼 붙어 눈을 똥그랗게 쳐다보고 우리를 바라보는 딸이 예쁘고, 또 너무 예뻤다. 사진을 찍고, 아이를 보고, 웃고, 또 '좋다'를 말하던 그 오후의 공기가 우리 부부에게 영원히 박제되었다. 집 근처 공원이라 여전히 그 길을 걸을 때가 많다. 우리 부부는 거의 매번 빼놓지 않고 그날을 복기한다. 이젠 딸이 그 길을 뛰어달리고 곧 남편이 아이를 잡으러 뛰어야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하다. 좋다, 참 좋다.

  보통의 가족은 먼 미래를 아이의 학령이나 나이에 맞춰 계획하게 마련이다. 이전에 우리는 미래를 이야기할 때, 그래서 5년 뒤 우리에게 아기가 있다면 몇 살일지, 갓난아기 일지, 임신 중 일지, 애기가 그때도 없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때쯤 아이가 몇 살일지 가늠할 수 없으니 뭐든 계획하기가 난감해지곤 했다. 그럴 때면 아기를 기다리는 삶은 멈춰버린 시계 같단 이야기를 자주 했다. 이제 우리는 딸과 함께 미래를 계획한다. 법원 결정이 끝나면 여권도 만들 수 있으니 함께 괌에 다시 다녀오자. 아이가 두 돌이 될 때쯤 나도 복직을 하고, 어느 어린이집이 좋을지 찾아보자. 애가 초등학교에 가기 전엔 꼭 차를 바꾸자. 중학생일 땐 유럽 여행을 가기로 하고 적금을 지금부터 붓자. 아기도 우리도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다시 내 인생이 시동을 거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늦었지만, 신나게 안전하게 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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