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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미 Oct 28. 2023

가을의 속삭임을 들어보셨나요?

툭.


흠칫 놀라 뒤돌아보았다. 이 소리는 뭐지? 여긴 나 뿐인데?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던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투욱.


잠시 후 또다시 들려온 소리. 그러나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대낮이었지만 약간 무서운 느낌에 책을 덮고 팔짱을 낀 채 소리가 들린 곳을 노려보았다.


‘내 독서를 방해한 범인을 찾고야 말겠어.’


내가 서 있던 곳은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대여섯 그루의 나무가 나란히 서 있는 짧은 길로, 그 끝은 저만치 보이는 캠핑장 입구를 향했다. 인도는 아니었지만 평일 낮이라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잠깐 서성거리기 괜찮았다. 사실 그곳 말고 딱히 가 있을데도 없었다.




생일을 맞은 언니에게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로 점심을 대접하고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이동했다. 식당에서부터 카페로 가는 20여 분 사이에 언니는 잠이 들었다. 새벽에 테니스를 치고 두 시간을 운전해서 왔으니 고단했겠지.


천천히 주차를 하고 언니가 깨길 기다렸다. 하늘 맑은 10월 중순이라 햇살은 따사로웠고 미세먼지 없는 공기도 깨끗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라 한적한 곳이어서 간간이 들리는 자동차 소리가 아니면 아주 조용한 곳이다.


‘이렇게 근사한 곳을 찾다니 운 좋았네.’


언니를 기다리는 동안 차 창문을 열고 햇살을 받으며 책 읽으려하는데 카페 옥상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온다. 올려다보니 너댓명의 손님들이 너나할 것 없이 목청껏 이야기하며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이 워낙 조용해 떠드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하여 도무지 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잠든 언니는 두고 차에서 내려 소리가 멀어지는 곳을 찾아 걷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노랗게 물든 나뭇잎이 켜켜이 쌓인 이 길 위로.


책과 함께 고요함 속에 빠진 나를 화들짝 놀래킨 범인을 찾기 위해 소리가 난 곳을 한참 쳐다보다 드디어 녀석을 만났다. 그것은 어이없게도 바로 낙엽.


낙엽...? 너였어?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이렇게도 컸던가. 내가 잘못 들은건 아닌가. 또 한참을 기다려 낙엽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툭.


정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맞구나. 내가 이걸 실제로 듣다니. 떨어지는 나뭇잎을 눈으로는 봤어도 소리로 들어본 적이 있던가. 놀라움과 신기함이 뒤섞인 감정이 나를 에워쌌다. 허리를 숙여 이제 막 바닥으로 내려앉은 나뭇잎 하나를 주워들었다. 마르긴 했어도 약간 촉촉했다. 순간 가을이 내 삶 속으로 성큼 들어온 것 같았다.


돌아보니 마흔 번이 넘는 가을을 만났다. 그런데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단풍잎을 간직해본지는 또 얼마나 오래 되었나. 내 곁을 수없이 오간 계절에게 제대로 인사한 번 한적이 없구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시간이 없다며 종종 거리던 내 삶이 정말 그 정도로 바빴던걸까. 자연은 이렇게 차분하고 조용하게 제 할 일을 다 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라고 닳고 닳은 변명을 해본다.


일 년이 지나 어느새 또 가을이다. 새로운 가을이다. 그러나 여전히 색과 소리와 질감으로 자신이 왔음을 알려준다. 마주치는 나무와 발길에 채이는 낙엽에게 눈인사를 해본다.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지난 해에 비해 한껏 친해진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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