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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y 17. 2022

[ 달팽이 ]

너도 행복하지?

노래하기를 즐기는 뮤지션 친구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인생 곡이 혹시 무엇이냐고...


이 말에 하던 행동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보았다.

문득, 싱어송라이터인 이적님의 '달팽이'라는 곡이 떠올랐다.


나선형 껍데기를 지고 천천히 걷고 있는 연체동물인 달팽이.

우리의 삶과 어쩌면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보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얇고 연약한 껍데기.
조개처럼 딱딱한 껍질도 아니고 배를 발로 사용하기에 빠르게 이동할 수도 없다.
스스로는 최선을 다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지만, 사람들이 볼 때는 너무나 느리고 연약한 존재인 것이다.


노래의 가사처럼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왜 그렇게 무겁고 긴 걸까?

오늘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난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걸까?

얼마나 더 열심히 뛰고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는 걸까?

그 끝을 알 수 없으니, 얼마나 뛰어야 하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치고 지치지만 계속 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인가?


이런 생각에 한참을 잠겨있다.


남들이 성공했다고 일컫는 사업가가 있다.

그는 평생을 아끼고 쓰지 않고 벌어서, 빌딩을 사고 큰 사업을 일구어냈다.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시점에 도달한 그는 깊은 후회를 남겼다.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 보다는 그냥 열심히 살았다. 나는 행복했는가라고 묻고 싶다'


삶을 마감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자신을 바라보고

내 인생을 위해 가장 노력한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삶에 있어서 적정함, 적당함이란 것을 알게 된다면, 살아가는 동안 행복이란 것을 더 잘 느끼며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하루를 사는 동안, 한 달을 사는 동안, 일 년을 사는 동안.

그리고 인생을 사는 동안 나는 무엇에, 어느 정도에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삶은 유한하다. 그리고 한계가 있다.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서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이들이나 국가를 잃어 난민이  사람들에게도 행복은 있다. 그들은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Need)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고 서로에게 나누려고 한다. 내가 조금 배가 고프더라도 함께 나누며 굶지 않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해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Need)를 벗어난 우리는 욕망(Desire)에 더 집중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자 하고,  누군가와 비교하게 된다. 얼마나 채워야 하는지도 모른  끊임없이 채우고 채워도,  충만함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면, 더 가질수록 마음이 빈곤해지는 것일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겨우 10평 남짓한 곳에서 온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매일매일을 힘들게 버티고 사는 듯 시간을 보내셨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는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어느 날 저녁, 검정 봉지를 들고 아버지는 귀가하셨다. 그 봉지 안에는 삼겹살이 차곡차곡 담겨있었다.

우리 형제는 비명을 지르며 신나 했다.
힘들고 고된 일을 겪으셨지만, 믿고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귀가하신 아버지.
감사한 마음으로 집안 잔칫날을 만들어주신 어머니.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행복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삼겹살  봉지가 모두를 웃게 하고  즐겁게 '잘될 거야'라는 '긍정의 ' 내일을 준비하는 당신들의 마음과 태도가 나에게 '만족과 감사' 대한 기준을 만들어준  같다.


누군가와의 비교가 필요하다면, 내가 정상의 범위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만 사용하면 좋겠다.

나에게 열등감을 심어주거나 비하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나를 위해 가장 열심히 노력한 나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이다.


묵묵히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달팽이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행복한 시간을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빠르다고,   튼튼하다고 그를 연약하고 무능하다 생각한다면, 내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며, 이것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 욕망의 기준이 명확하다면, 흔들림 없이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저녁도 소소한 찬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이 시간이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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